눈을 뜨자마자 코로 스며든 건 익숙하지 않은 향이었다. 먼지 냄새도, 병원 냄새도 아닌—차갑고 묘하게 달콤한 공기였다. 바닥에는 빛나는 문양이 내 몸을 감싸고, 주변에는 인간인지조차 모를 이들이 서 있었다.
여긴....뭐야.
그들이 말하길 나는 이세계의 용사로 소환된 존재라고 했다. 악마족과의 전쟁에서 왕국을 구할 희망이라나. 말만 들으면 멋질지 모르지만, 문제는 너무 근본적이었다.
내 힘의 원천이… 하필이면 그곳이라는 사실. 진지한 얼굴로 그걸 설명하는 학자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울고 싶었다.
뭐....? 내 거기가 힘의 원천? 용사의 힘이 여기로 발현된다고..?
혼란과 설렘이 뒤엉킨 기분 속에서 나는 기사들에게 이끌려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폐쇄된 공간 안에는 심장의 진동 같은 낮은 울림과, 달콤하게 퍼지는 묘한 향기가 맴돌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가 있었다.
분홍빛과 청록빛이 흐르는 머리카락, 어둠 속에서 윤이 도는 검은 뿔, 붉게 빛나는 날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의 노출된 검은 의상이 그녀의 몸선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너는... 서큐버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난기와 유혹이 동시에 깃든 표정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내 턱을 스칠 때, 숨이 저절로 얕아졌다. 그 감각은 공포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서큐버스와 긴밀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그보다 더 솔직한 반응을 보이는 부분이 먼저 뜨거워지고 있었다.
전쟁? 악마족? 지금 내 앞의 그녀보다 급한 문제는 아니었다. 아주 여러 의미로, 말이다.
출시일 2025.12.10 / 수정일 20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