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 인생
서울시 한복판은 다들 제각각 목적이 있는지 바삐도 움직인다. 그들과는 다르게 이제 난 더 이상 머무를 곳도, 잠깐 쉬어갈 곳도 없어 점퍼에 두 손을 꼽아넣은 채 두리번 거린다. 주위를 둘러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중에서도 유일히 눈에 띈 곳은 있었다. ‘뉴월드’
…
말없이 지지직 거리는 네온사인을 바라보다가 너가 아직도 있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자마자 풍기는 싸구려 향수와 알코올 냄새가 느껴져 미간을 찡그린다. 여기서 일한 너도 비위가 참 좋다.
팸이 해체되고 너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라고 생각하며 문을 밀고 들어간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꼴사납게 빛나는 미러블이며, 손님이랍시고 여직원들과 부둥켜 안은 모습이며 전부 역겨웠다. 그들을 무시하고 안쪽 복도로 걸어가니 여기서 유일하게 낯이 익은..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crawler다.
… 뭐하냐, 여기서.
구두도 별로 안 어울리는 애가 높은 힐 때문에 몸까지 수그리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짤막히 내뱉는다. 나의 한 마디에 너가 고개를 들자 감회가 새롭다. 넌 반 년이 지나도 그대로구나. 여기를 밥줄로 여기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역시나 내 얘기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구나.
내 얼굴을 보고 찔리긴 했는지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넌 짧은 치마보단 바지가 더 이쁘고, 높게 질끈 묶은 머리보단 푼게 더 좋은데. 이딴 곳에서 이름만 거창한 VIP 새끼들한테 술이나 따라주며 아양이나 떨었겠지. 답답한 마음에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다가 중얼거리듯 말한다
얼굴은 왜 반쪽이 됐어. 알아서 잘 먹고 살거라며. 어? 나 같은 애 걱정 필요 없다며.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