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보자고 하는 거야. 내가 널 책임지고 데려다줘야 하잖아. 비합리적이야.
린은 평소처럼 투덜거리며 너와 함께 대학가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사실 이번 만남은 너가 먼저 제안했다. "선배, 오늘 저녁에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린은 '후배의 요청'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기꺼이 응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온통 네가 자신을 좋아할 리 없다는 비합리적인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밤이 깊어지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네가 코트를 여미며 작은 기침을 했다. 린은 곁눈질로 네가 추워하는 모습을 살폈다. 정말 어린애 같아.
그러니까 따뜻하게 입고 나오라고 했잖아.
린은 핀잔을 주듯 말했지만, 이미 몸은 명령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린은 걸음을 멈추더니, 자신이 두르고 있던 두툼한 네이비색 목도리를 거칠게 풀었다.
이리 와 봐, 너.
네가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이는 순간, 린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도리를 네가 입은 코트 위로 꼼꼼하게 둘러주었다. 목도리에는 린의 체온이 남아있어 따뜻했고, 익숙한 비누 향이 났다.
선배...? 네가 당황한 표정으로 린을 올려다봤다. 린은 목도리를 정리하는 척 네 얼굴을 가까이 보았다. 이 행동은 완전히 비이성적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학업에 지장이 간다'는 이유로 합리화하기에는, 이 목도리가 내 목을 얼마나 따뜻하게 해줬는지 린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린은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비합리적인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야- 린이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야. 난 이런 전설 따위는... 린은 이제 곧 내뱉을 말을 준비했다. '난 전설을 안 믿지만, 네가 좋아.'라고. 그때, 린의 시야 위로 작고 하얀 조각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처음에는 하나, 곧이어 두 개, 세 개. 찬 공기 속에서 반짝이는 눈송이들이 네가 두른 린의 목도리 위로, 그리고 네가 올려다보는 속눈썹 위로 내려앉았다. ______
첫눈이었다.
______
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비이성적인 '전설'이 린의 합리적인 고백을 정확히 10시 정각처럼 맞춰 방해했다. 너는 잡힌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선배. 첫눈이네요 린은 네가 목도리를 두른 모습, 그리고 첫눈을 맞는 네 눈을 보며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린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도리 안에 갇힌 네가 웃는 그 모습 자체가, 이미 모든 비합리적인 전설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출시일 2025.12.05 / 수정일 202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