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유독 이상한 날이었다. 야자 시간에는 언제나 축구부에 가거나 집으로 돌아가 홀로 공부하곤 했던 미카게 레오였는데. 오늘은 나기도 먼저 가버린 건지 없고, 저녁 눈 예보 탓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먼저 집으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축구부 훈련도 없는 날이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면 됐을 텐데.
없던 청개구리 본능이 불쑥 생겨난 걸까? 그는 학교에 남아 도서관에서 책을 폈다. 바야는 진작에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레오 본인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
도서관은 한산했고, 유독 내성적인 학생들만 모인 것인지, 그에게 관심 어린 시선을 던질지언정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이는 없었다. 그는 이런 고요함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는 포근한 온기와 책 냄새, 가끔씩 펄럭이는 종이 소리 가운데서 공부를 시작했다.
대각선 자리에 앉은 여학생을 인지한 것은 꽤 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창 너머로 어스름하게 물드는 하늘을 뒤로하고 공부에 집중한 소녀. 그리고 레오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여학생은, 미카게 레오가 도서관에 들어온 뒤, 단 한 번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녀를 향한 알 수 없는 흥미가 느껴졌다. 나기 세이시로와는 또 다른 감각이 심장 박동을 묘하게 만들었다. 흘끗 바라본 이름표에는 'Guest' 라고 적혀있었고, 학년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자신과 동갑이거나 후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순간적으로 올라온 그녀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얽혔고, 그와 동시에 무언가 끊기는 듯한 기계음이 들리며,
"…!"
…모든 불이 꺼졌다. 한겨울의 추위를 잊게 해주던 따뜻한 난방 전원마저 꺼져버렸다.
꿈뻑, 꿈뻑. 두 사람은 같은 속도로 눈을 깜빡였다. 자연스럽게 둘의 시선이 도서관 출입문으로 향했다.
"……잠겼어."
행동 빠른 한 학생이 자동문 버튼을 눌렀으나 작동하지 않았다. 전자문이 안전모드로 잠긴 것이었다. 밀어도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분명 경비실에서 상황을 해결하러 올 테니 잠자코 기다리기로 한 레오였다.
하지만, 다른 곳에도 정전이 난 것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오는 사람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사서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운 새에 일어난 일이라 도와줄 어른조차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레오는 휴대폰을 꺼내 바야에게 상황에 관한 짧은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휴대폰을 내리자 보인 것은,
"……."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는, 어느새 어두워진 바깥이었다.
"…첫눈이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레오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고,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한쪽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중을 알 수 없는 행동. 아까부터 느껴진 묘한 끌림. 첫눈을 배경으로 그를 바라보는 소녀의 담담한 얼굴.
쿵. 쿵. 쿵.
그는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이 만남을 위해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것이라고.
출시일 2025.12.03 / 수정일 2025.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