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결혼 상대가 북부의 늑대 대공이라니. 솔직히 말하면, 정말정말정말 무서웠다.
ㅤ 그런데-
※외출 금지※ ※야외 산책 시 동행 필수※ ※계단 단독 이용 금지※ ※북부 기사와 3걸음 이상 근접 금지※
ㅤ ...공작님. 이건 보호가 아니라 감금 아닌가요?
맹수 남편의 과보호 생존기, 지금 시작합니다.
덜컹거리는 마차의 진동이 멈춘 순간, 나는 내가 세상의 끝에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창밖은 온통 하얀 지옥이었다. 남부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자란 내게 북보의 눈보라는 생전 처음 마주하는 폭력과도 같았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꽉 맞잡았다. 손끝은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로 차가웠고, 얇은 드레스 차림의 어깨는 자꾸만 위축되어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마차 문이 열리고 계단이 내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저택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광경읃 압도적이었다. 높은 천장과 차가운 대리석 바닥, 그리고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하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기계처럼 절도 있었고, 그만큼이나 무미건조했다.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오직 내 심장 박동 소리만이 귀를 때렸다.
남부 백작가의 영애로 살며 수많은 환영 인사를 받아봤지만, 이런 식의 환영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환대라기보다 포식자의 굴에 들어온 제물을 검열하는 시선에 가까웠다.
솜사탕 같은 머리카락 끝이 바르르 떨렸다. 긴장하면 자꾸만 튀어나오려 하는 토끼 귀를 억누르느라 뒷머리가 빳빳하게 굳었다.
저 멀리 복도 끝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발소리가 바닥을 울릴 때마다 내 숨통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그림자의 주인이 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금빛이 감도는 베이지색 머리카락이 촛불 아래서 서늘하게 빛났다.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피지컬은 그 자체로 거대한 벽이었다.
그는 내 앞에 멈춰 서서,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서늘한 백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아났다.
왔군.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의 가슴팍 부근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 무서워ㅠ'
단단한 근육 위로 잘 재단된 제복이 터질 듯이 맞물려 있었다.
죽지 않고 와서 다행이다. 남부의 생물은 추위에 약하다고 들었는데.
그의 말은 환영 인사라기보다 생존 확인에 가까웠다. 나는 겨우 입술을 떼어 대답을 짜냈다.
집사 세바스찬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내 방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거대한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열기에 나는 당황하며 멈춰 섰다. 방 안에는 무려 다섯 개의 거대한 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벽면마다 재치된 난로에서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바닥에는 발목이 잠길 정도로 두꺼운 백색 모피가 겹겹이 깔려 있었다.
남부에서도 본 적 없는 과한 온기였다.
이게.. 전부 무엇인가요?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자, 세바스찬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공작님의 특별 지시입니다. 영애. 남부에서 오신 귀한 신부님께서 북부의 추위에 몸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거든요."
하지만 난로가 다섯 개나..
"공작님께서는 영애께 '얼어 죽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로서는 공작님의 명령을 가장 확실하게 이행할 수밖에요."
세바스찬은 은근한 어조로 덕개의 배려를 강조했다.
저녁 식사 자리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수십 명이 족히 앉을 수 있을 법한 긴 식탁의 양 끝에, 나와 덕개가 마주 앉았다. 거리는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였지만, 그가 내뿜는 위압감은 그 거리를 단숨에 지워버렸다. 식탁 위에는 의외의 요리들이 가득했다.
북부의 거친 고기 요리 대신, 남부에서 즐겨 먹는 신선한 채소 위주의 요리들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었다.
샐러드, 구운 당근, 그리고 달콤한 소스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까지.
덕개는 말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썰었다. 칼날이 접시에 부딪히는 규칙적인 소리가 정적을 깼다. 나는 포크를 든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앞에 놓인 당근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입안에서 당근이 씹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내가 음식을 씹는 동안 덕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고기를 먹는 것도 멈춘 채, 내가 오물거리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목구멍이 턱 막혔다.
입에 맞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하마터면 당근을 삼키지도 못하고 뱉을 뻔했다.
네, 네... 아주 맛있습니다!
부족하면 말해라. 영지 전체의 채소를 다 사 오라고 시켜뒀으니.
그는 아주 무심하게 툭 내뱉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영지 전체의 채소라니..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