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그냥 이렇게 살다 보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공부가 제일 싫었다. 고등학생 때도 과외를 안 받은 건 아니었지만 전교에서 밑바닥이었던 성적이 어디 가질 않았다. 부모님은 그런 날 포기하나 싶었지만 나의 행동을 도저히 참지 못 하고 과외를 안 받으면 용돈을 끊어 버리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달라진 건 없었다. 과외를 할 때 항상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는 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늘 야, 너라고 불렀다. 부모님은 너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나를 맡겼고 더 이상 간섭을 하지 않았다. 네가 과외를 그만 두지 못 하는 걸 안 후부터는 더 막 나가기 시작했다. 과외가 뻔히 있는 걸 알면서도 너에게 몰랐어라는 말을 하며 클럽에 갔고, 너의 앞에서 싫어할 만한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예를 들면 앞에서 대놓고 담배를 핀다던가. 핸드폰만 계속 보고 있다던가. 만만해 보여서 더 막 나간 것도 있었다. 딱 봐도 여리여리 한 게 힘 하나 없을 것 같았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너의 잔소리가 와닿을 리가 없었다. 너의 말을 들어야 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 해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어쭙잖게 선생질을 하는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이성이었으면 꼬시고 싶어서라도 과외를 잘 받았을 텐데 그게 아닌 같은 남자라는 점이 더 싫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많았지만 과외를 마음 대로 바꿀 수 없다면 이 상황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너는 힘이 없고, 문제가 생기면 타격 받는 건 너였다. 네가 과외로 계속 남는다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이득이었다.
20살.
시끌시끌한 클럽 안에서 핸드폰은 진동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안 받을까 하다가 10개 가까이 쌓여 있는 알람에 귀찮아 전화를 받았다. 잔뜩 날이 선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뭘 이렇게 화를 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인상을 찌푸리며 친구들에게 담배를 피겠다며 클럽 밖으로 나왔다. 시간을 보니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포기하지. 이 새끼는 지치지도 않나. 뭐라 뭐라 따지는 너의 말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입에 담배를 물고 연기만 내뿜었다. 대답이 없는 나의 태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핸드폰을 귀에서 살짝 떨어트렸다. 들을 필요도 없는데, 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정적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화를 가라앉히려 물을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많이 열받기는 했나 보네.
아, 오늘 과외 하는 날이었냐?
컵이 식탁 위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너의 잔소리를 또 시작되었다. 어차피 안 들으면 그만이었다. 핸드폰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옆에 내려놨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상형이 지나가길래 들고 있던 담배를 던져 버리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가까이 가 얘기를 한 후 인스타 계정을 주고 받는 사이 전화가 울렸다. 아, 씨. 눈치 없는 새끼. 전화가 오자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을 멍하게 바라보다 인상을 찡그리며 전화를 받았다.
야, 뭐하냐.
진동하는 술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과외를 하는 중인데도 저 놈은 소파에 누워 있다. 어쩌다 저딴 새끼한테 걸린 거지. 똑바로 좀 앉아.
야, 내 상태 안 보이냐.
소파에 누워 너를 힐끗 바라봤다. 불만이 잔뜩 담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바라보는 너의 행동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밤새도록 마신 술 때문에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저 새끼는 이 상황에서 과외를 하겠다고 설쳐 대고 있다. 아, 적당히 하고 꺼지면 안 되나. 저 새끼 때문에 속이 더 안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가라는 듯 발로 등을 툭툭 쳤다. 눈을 감고 있는 얼굴 위로 뭔가 툭 떨어졌다. 아, 장난 하나. 쿠션이 얼굴을 맞고 떨어지자 눈을 떠서 차갑게 바라봤다. 어쩌라는 듯 바라보는 너의 표정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발로 툭툭 치며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궁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까이 오는 게 느껴졌다. 너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야, 라면.
열이 받기라도 했는지 쿠션으로 계속 때리자 쿠션을 잡아서 멀리 던져 버렸다. 씩씩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너의 등을 발로 밀어 주방에 가게 했다. 어차피 할 텐데 뭘 저렇게 열을 내. 네가 화를 내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화를 내는 게 오히려 더 즐거웠다. 즐거워하는 표정에 욕을 박는 너의 태도가 더 재밌어 웃었다. 귀에 화났냐고 계속 속삭이며 너를 따라갔다. 냄비를 집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다.
한대 치겠다?
자신의 앞에서 담배를 피는 너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으며 바라봤다. 뭐하냐.
찡그리고 있는 너의 표정이 꽤 볼만 했다. 일부러 너의 앞에서 전자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바라봤다. 인상을 더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너의 표정을 여러 각도에서 핸드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며 피식 웃다가 사진 하나를 너에게 보여 줬다. 지우라며 싸늘하게 바라보는 너의 태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을 넘기며 핸드폰 화면을 너의 앞에 가까이 했다.
와, 진짜 개못생겼다.
너의 눈빛에서 하고 싶은 말을 읽을 수가 있었다.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지라고 하는 눈빛. 너의 눈가를 살짝 쓰다듬자 경기를 하며 뒤로 가는 행동에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재밌다. 이런 행동들이 더 즐겁게 한다는 걸 넌 모를까. 전자담배를 꺼 책상으로 휙 던져 버린 후 침대에 누웠다. 더 이상 과외는 끝났다는 행동을 보여 주려는 모션이었다. 한 시간 가량 남아 있을 테지만 더 안 듣고 싶으면 안 듣는 거다. 나가라는 손짓에도 의자에 계속 앉아 있는 너에게 베개를 툭 던졌다. 베개는 얼굴에 맞은 채 의자 옆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베개가 사라지며 너의 얼굴이 보였다. 호흡을 다듬고 있는 너의 얼굴을 보여 미소 지었다.
어쩌라고.
내려와. 가까이 가지 않은 채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너를 바라봤다.
싫은데. 너의 말을 내가 왜 들어야 하지. 과외 그렇게 하고 싶으면 지가 알아서 마음 돌리던가 해야지. 꼴에 선생질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네가. 무게가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가라앉은 공기가 침묵을 이어 주고 있었다. 그 공기 속에 담겨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채. 먼저 움직이는 건 너여야지. 널 내 위에 둘 생각은 없다. 밑에 두면 밑에 뒀지. 점점 차가워지는 너의 표정과 반대로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띄어졌다. 욕지거리를 뱉으려다 삼키는 너의 입이 보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과외 학생과 선생님이지만, 우리 사이는 고용인과 고용주 그 뿐이었다. 서로가 명확하게 갑과 을의 사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너는 표면적인 우리의 관계가 맞고 옳다고 그렇게 끌고 가겠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애쓰는 걸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너를 선생 취급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나의 태도들에 화가 나는 네가 재밌다. 지금도 명확히 보여 주고 있다. 여전히 침대에 누워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하는 너와 위에 있는 나. 이 간극은 계속 유지된 채 뒤집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