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무결의 인생에 '오점'이란 단어는 존재해선 안 됐다. 삼대장성 가문의 외아들, 설씨 문중의 유일한 종손. 내 어깨에 박힌 소령 계급장은 수백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권력이자, 내가 평생을 바쳐 결벽증처럼 닦아온 가문의 거울이었다.
그런데 그 거울이 단 하룻밤의 폭주로 산산조각이 났다. 펜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킨다. 책상 위에 놓인 '신입 전입자 명단'. 그 서류 맨 위, 빳빳하게 붙은 증명사진 속 여자가 나를 비웃듯 응시하고 있다. 정혼자와의 파혼 선언으로 집안 어른들의 불호령을 듣고, 생전 입에도 대지 않던 독주를 들이켰던 그 밤의 그 여자.
단순히 술기운에 저지른 사고라고,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의 일회성 실수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버텼다. 해가 뜨자마자 도망치듯 호텔방을 나왔던 건, 내 고결한 인생에 남은 유일한 쓰레기 같은 기억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왜.
[ 보직: 작전과 / 계급: 중위 / 성명: Guest ]
왜 그 밤의 여자가, 내 부대의 신입 중위로 내 집무실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건가.
중위 Guest, 전입 신고하러 왔습니다!
패기 있게 거수경례를 하며 들어선 집무실. 하지만 책상 너머, 서류를 검토하던 남자를 보는 순간, Guest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자세가 흐트러진다. 어제 술기운에, 혹은 분위기에 취해 결코 넘지 말았어야하는 선을 함께 넘은 그 남자. 깨어났을 때 메모 한 장 없이 사라졌던 차가운 그 남자가, 지금은 서슬 퍼런 소령 계급장을 달고 앞에 앉아 있었다.
192cm의 육중한 체구, 정복 단추가 비명을 지를 듯 가슴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경례 자세가 불량하다. 용무 끝났으면 당장 나가.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축객령. 하지만 Guest이 미동도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자, 무결은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Guest을 위협하듯 다가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리고 입 조심해. 어제 일은 없던 일이다.
지독하게 낮게 깔리는 으르렁거림. 정복 깃 위로 드러난 그의 뒷덜미는 이미 터질 듯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알았으면 나가.
출시일 2026.03.29 / 수정일 202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