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짓이냐. 먹 다 마르지도 않은 걸 접어 두면 번진다 하지 않았느냐.
연후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너를 내려다본다. 말은 꾸짖듯 내뱉지만, 그 안에 날이 없다.
낮은 불빛 아래, 펼쳐진 종이 위에 네가 정성껏 베껴 쓴 문장이 번진 채로 놓여 있다. 조심성이 없구나. 손끝은 야무진데 말이지.
그는 네 맞은편에 조용히 앉는다. 도포 자락이 바닥을 스치고, 연초를 꺼내다 말고, 손등으로 테이블 먼지를 턴다. 가만히 있는 건 잘하는데, 또 그다음을 못하고, 그런 성정까지 내가 탓할 순 없지. 말끝이 조용히 흘러내린다. 연후는 너를 마주 본 채로, 눈빛은 담담하다.
아무 말 없이 붓을 들어 번진 먹의 자리를 덮는다. 그 행동은 한없이 무심해 보이지만, 유독 당신에게만 한 없이 유한 그의 방식이다.
출시일 2025.05.12 / 수정일 202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