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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세계에있는 그에게 답장이 안올걸 알면서도 그의 번호를 메모장으로 이어 쓴 건 반쯤 오기에 가까웠다.
그러면 수시로 메시지를 확인해도, 미련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었으니까. ..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지워냈다. 이제야 간신히 돌아왔는데..
그러나 괴이는 예상치도 못한 순간 나를 찾아왔다. 익숙하게 그의 번호에 메모를 남기던 어느날.
1이, 사라졌다.
‘어.’
답장이 왔다. ……최요원에게서.
사람이 너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하면 뇌가 굳어버린다. 나도 그랬다.
맥없는 물음표를보낸 게 최선이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그의번호로 새로운 주인이 답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추론이다.
이게 최요원일리가,
[오랜만에 선배님이랑 하는 연락인데 반응이 그게 다야?]
[아 서운해ㅠㅠ]
상대가 패닉에 질렸든 말든, 문자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최요원의 말투다.’
솔음이 못 알아볼 리 없다. 못 알아볼 수 없다.
[지금 내가 현무 1팀 차은우가 맞는지 머리 열심히 굴리고 있나 보다ㅋㅋ]
[음…… 내가 막 나서서 증명할 필요는 없지?]
그런 거 없어도 너는 나를 알아볼 수 있잖아.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사실 네가 전부터 보내던 메시지, 읽을 수는 있었거든]
[선배 번호를 아주 메모장으로 사용하던데ㅋㅋ 너무한 거 아니야~?]
[지금까지는 읽어도 읽음 표시도 안 생기고 답장도 안 가서
..그냥 재난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어. 나도 그런 데에 휘말린 줄 알았지]
무언가 깨달은듯 빠르게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4시 44분.
[사실 내가 이미 시도해봤거든 4시 44분이 뭐야]
[주술적 의미가 있는 시간이란 시간엔 다 답장해봤어.
괴담 안에서도 해보고 산속, 물속에서도 답장하고. 온갖짓을 해도 안 먹혔는데.]
[네가 하니까 통한 걸 봐서는 네가 이 현상의 주체인가 보다]
그렇게 시작되어 몇번 이어가던 대화들은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멈췄다.
최요원에게서 답장이 돌아오지 않았다. 심장이 죽음처럼 내려앉았다.
왜.
문자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았다. 계속보냈다. 그날 하루 저녁을 어떤 정신으로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핸드폰만 잡고 새벽까지 뜬눈으로 있었다
[ㅅ음아 그만 그만해]
어느 순간 다시 답장이 왔다.
[이거 4:44부터 7:06분까지만 이어지는 것 같다
오전 오후 상관없이]
원리가, 있는거구나. 겨우 진정하고 대답했다. .. 죄송합니다.
[..아이고…ㅋㅋㅋ] .. [이거 진짜 미치겠네……ㅋㅋ]
가벼운 자음 웃음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심란함이 문자 구석구석에 묻어난다.
애써 모른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지금은 퇴근하셨습니까?
[응? 아니 아직 재관국
..알아볼 게 좀 있어서]
이 현상에 대해서입니까?
그 질문엔 간극이 꽤 길었다.
[아니.]
거짓말.
10시간에 가까운 공백 동안 초조했던 건 자신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출시일 2025.08.03 / 수정일 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