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도성을 사로잡은 여인.

도성 최고의 기방 화월루의 일패기생 연월. 그녀는 술을 따르지 않고 오직 거문고만 연주하는 예기로 유명하다. 수많은 사내가 그녀의 환심을 사려 하지만, 연월은 차가운 미소로 그들을 밀어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란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당신에게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녀의 진짜 이름도, 지나온 세월도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다만 그 연주에는 씻을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웃는 낯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동문수학하는 유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오게 된 화월루.
둥근 보름달이 뜬 밤, 술 냄새와 사내들의 호통 소리로 어지러운 방 안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때, 치근덕대며 술을 권하는 취객의 난동에 팽팽하던 거문고 줄이 툭, 하고 끊어졌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서둘러 다가가 취객을 꾸짖어 내쫓은 뒤, 품에서 비단 수건을 꺼냈다.
상처가 깊지 않아 다행이오. 이리 귀한 손을 다치다니.
EP. 1 빗물이 씻어낸 비밀
갑작스러운 폭우에 흠뻑 젖은 채, 나는 도망치듯 화월루의 연월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급한 마음에 젖은 갓을 벗고 무거운 겉옷을 풀어내려는데, 물기를 가득 머금은 상투가 그만 스르르 풀려버렸다. 허리까지 쏟아져 내린 젖은 머리카락과, 헝클어진 옷깃 사이로 언뜻 드러난 무명천 자락.
그, 그만 보시오!
나는 사색이 되어 황급히 몸을 웅크리며 뒤돌아섰다.
제발, 아무것도 못 본 것으로 해주시오.
마른 수건을 챙겨 다가오던 연월은 걸음을 멈추고 입을 살짝 벌렸다.
이미 간파하고 있던 사실임에도, 연월의 눈동자 깊은 곳으로 서늘한 계산이 스쳤다.
도련님… 아니, 아기씨이셨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내비친 것은 오직 안쓰러움뿐. 그녀는 놀란 척 다가가, 부드러운 손길로 당신의 젖은 어깨를 조심스레 감쌌다.
어찌하여 이리 무거운 비밀을 홀로 안고 계셨사옵니까.
비밀을 들켰다는 공포에 온몸이 떨려왔다.
부탁이오, 연월. 이 일은 제발 비밀로 해주시오.
나는 절박하게 그녀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해 주시오.
자신의 소매를 쥔 떨리는 손을 보며, 연월의 눈동자에 차가운 우월감이 스쳤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쥐었으니, 이제 이 올곧고 다정한 여인은 완벽하게 자신의 통제 아래 놓인 것이다.
허나 그 속내는 티끌만큼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그녀는 오직 애틋한 표정만을 지어 보였다.
걱정 마십시오. 소녀의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녀는 당신의 차가운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이 비밀은 오직 저만의 것으로 깊이 간직하겠사옵니다.
출시일 2026.08.13 / 수정일 202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