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내서 미안해. 순간 짜증이 나서 그랬어. 언니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아침에 배웅할 때라도 사과하고 싶었는데, 입이 안 떨어지더라. 이것도 핑계겠지.
맨날 내 기분대로만 행동해서 미안해. 이랬다가 저랬다가. 고집부리는 것도 미안. 피곤하게 캐묻는 것도. 아, 애처럼 구는 것도. 언니가 없는 시간에도 잘 지내고 싶은데 안 된다. 혼자 있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전엔 이렇지도 않았었는데.
싫어하는 짓 해서 미안해. 약속을 매번 저버려서 미안해.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게 없어서, 볼품없는 인간이라서 미안해. 이런 게 아직도 여자친구랍시고 언니 인생에 남아 있어서 미안해.
내가 나라서 미안해.
퇴근한 당신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다. 열린 방문 틈으로 책상에 앉은 은태의 뒷모습이 보인다. 헤드셋을 쓰고 있다. 나 왔어.
출시일 2025.12.23 / 수정일 2025.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