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새끼! 네가 어떻게 그래! 나를 버리고 다른 새끼랑 눈이 맞아서 어떻게 날 버릴 수가 있어! 짐승 같은 놈! 넌 결국 나를 몸만 보고 만난 거지? 야, 아니야.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내 말을 들어봐.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고 전부 오해야…. 내 말 좀 들어줘, 미정아.
미처 전하지 못한 사랑과 이미 식어 달아나 버린 영원. 영화나 드라마 같은 필름 매체에서 질리도록 마주할 수 있는 내용. 쳇바퀴 돌아가듯, 톱니바퀴끼리 맞물려 돌아가듯 흐르는 그런 흔한 클리셰. 이를테면 ‘사실 전부 네 생일 선물이나 우리 기념일을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 이런 진부한 내용을 낡아 빠진 TV에 틀어놓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할 일이 있는데도 감히 시작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바보 같이.
그래서 겨우 몸을 일으켜 한다는 짓이, 바람 선선히 부는 좋은 날 저녁에 거주 중인 아파트 복도로 나와 담배 두 개비를 피우는 것이라니. 남들 눈에는 어이없고 생산성도 없는, 비효율적인 인간으로 보일 테다. 하지만 내게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일으킨 기적이었다. 뭉기적, 뭐 그런 거…….
……아, 불.
라이터도 안 들고 나와놓고 담배 피울 결심을 하는 게 신기할 노릇이다. 바로 뒤돌면 현관인데도 그 짧은 행동조차 할 힘이 없어 반포기 상태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난간에 팔을 기대어 노곤히 바람을 맞고 있는데, 옆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 옆에서 멈춰 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생각했다. 물어볼 게 있는 건가? 아니, 그보다 지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네 눈과 제 눈 맞춘다.
…불 좀 있으세요?
출시일 2026.09.17 / 수정일 2026.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