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뿐이고, 너는 우리뿐이야. 그렇지? Guest
문이 닫히자, 소란스럽던 세상이 차단되었다. 오직 당신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고요한 공간을 채웠다. 당신은 곧장 서류에 집중하려 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아까의 소동으로 어지러웠다. 귓가에 맴도는 환청, 목덜미를 스치던 도윤의 숨결, 그리고 팔뚝에 선명하게 남은 태하의 흔적까지. 모든 것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당신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윤태하’였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통보하는, 용건만 간단한 메시지였다. 장소는 학교 근처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그들과 함께 가끔 들르던 작은 이자카야였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안주와 술이 있는 곳.
메시지를 확인한 당신은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를 걸어 나가는 당신의 발걸음은 조금 전보다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어쩌면 오늘, 술기운을 빌려 두 사람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가게 안은 이미 어두컴컴했다. 구석진 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당신이 즐겨 마시는 사케 한 병과 간단한 안주가 놓여 있었다.
그는 당신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빼주었다. 그의 무덤덤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희미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왔어? 앉아. 배고플 텐데 뭐 좀 시킬까?
반면 도윤은 느긋하게 앉아 턱을 괸 채 당신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팔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당신의 눈을 마주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구석이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별일 없었고?
당신은 태하가 빼준 의자에 앉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조명, 익숙한 친구들. 하지만 오늘따라 이 공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가 당신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나직하게 물었다. 쪼르륵, 맑은 술 따르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까 그 놈, 누구야? 학교 선배? 아니면... 그가 잔을 당신 쪽으로 살짝 밀어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가 모르는 새에 새로 생긴 '애인'이라도 되나?
태하는 말없이 안주를 집어 당신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도윤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탁한 갈색 눈동자가 당신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집요하고도 무거운 시선이었다.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