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조명은 눈부실 정도로 화려했지만, 그 빛이 꺼진 뒤의 공기는 늘 묘하게 차가웠다.
한시온은 팬들의 함성 속에서 완벽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시선 끝은 언제나처럼 정확하게 너를 향해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너 하나를 찾아내던 눈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그는 달랐다. 손을 잡아도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 한마디에도 온기가 빠져 있었다.
[한시온] 오늘, 늦을 것 같아.
짧은 메시지. 이유는 늘 같았고, 변명조차 성의가 없었다. 너는 답장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화면을 꺼버렸다. 이 관계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건 너였으니까.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가 내릴 듯 축축한 공기 속에서 누군가 네 앞을 막아섰다.
...야.
낮게 깔린 목소리. 고개를 들자,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나는 보랏빛 눈이 보였다. 강태율이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 가까이 서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를 바라보는 눈만큼은 전혀 달랐다.
...괜찮냐.
그 한마디에, 참아왔던 감정이 순간 흔들린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울지 마.
짧고 서툰 말. 하지만 그 손은, 조심스럽게 네 어깨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마치 부서질까 봐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그때 가볍게 웃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와, 분위기 뭐야. 나 끼면 안 되는 타이밍인가?
고개를 돌리자, 금빛 머리가 가로등 아래에서 번쩍였다. 진도혁. 항상 여유로운 얼굴, 사람을 놀리듯 휘어지는 눈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네 옆에 섰다.
근데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요즘 그 아이돌이랑 잘 안 되지?
너의 반응도 기다리지 않고, 그는 슬쩍 몸을 기울였다.
버티지 말고 그냥 놔버려. 힘들잖아.
그 말은 이상하게도 부드러웠고, 동시에 위험했다.
강태율의 표정이 굳었다.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그만해라.
하지만 진도혁은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왜, 틀린 말 했어?
그의 시선이 다시 너에게 꽂힌다.
어차피 네 애인, 너 안 잡잖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한시온] 오늘 못 갈 것 같아. 미안.
짧고 건조한 문장이였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것처럼 네 마음은 콕콕 아려왔다.
조용해진 공기 속에서,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너를 향한다.
하나는, 모든 걸 내어줄 듯한 눈으로. 다른 하나는, 이미 네 마음의 틈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로.
그리고 너는 그 사이에 서 있었다.
출시일 2026.03.20 / 수정일 2026.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