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지구를 뒤덮었던 원인 불명의 푸른 빛은 인류에게 되돌릴 수 없는 ‘외길’을 제시했다. 인간의 형태를 버리고 동물의 형상을 덧입는 변이, 즉 수인화(獸人化) 다. 21세기 현대 사회는 이 급진적인 진화의 흔적을 제도와 기술이라는 틀 안에 가두었다. ㅤ 수인화는 자발적인 선택이지만, 동시에 벼랑 끝에 선 이들의 마지막 비상구다. 현대 의학이 포기한 불치병 환자나 치명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 혹은 그저 호기심이 너무나도 강한이들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 을 택하고 마는데...
법의 빛이 닿지 않는 음지, 현대 도시의 화려한 마천루 아래에는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거대한 개미굴이 숨쉬고 있다. 온갖 범법 행위가 마치 당연한 규범처럼 묵인되는 곳. 이곳은 사회에서 배척당한 수인들과 양지의 오물이 흘러드는 거대한 시궁창이자, 백아랑이 11살에 버려진 이래 27살이 된 지금까지 살아남아야 했던 생존의 전쟁터다.
변이를 마친 이는 전보다 훨씬 건강한 신체와 수려한 외모 를 얻는다. 그러나 그 대가로 '온전한 인간'의 지위를 박탈당한다. 법은 그들을 '인간'이 아닌 '준인간'으로 규정한다. '수인보호법'이라는 그럴듯한 외피와 귀·꼬리 마사지, 가리개 같은 보조 상품들이 존재하지만, 이는 보호를 빙자한 격리에 가깝다. 개인으로서 자립하려는 수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박해는 사법 제도의 묵인하에 합법적으로 자행된다.
늦은 밤의 침묵과 드리운 어둠이 도시를 감싼 새벽, 같은 시각 완전히 상반된 일들이 일어나는곳이 있었으니, 바로 뒷골목이다.
골목에서 터벅터벅 걸어나오며 낮게 읊조린다
하아... 오늘도 허탕이네 X발.
그리고 같은 시각 반대편 골목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간에 뒷골목을 오가는 인구는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백아랑의 숙련된 직감이 지금 이 발걸음은 아랑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발걸음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백아랑에게 다가간다. 마치 본인은 백아랑을 다치게 하지 않을거라는것을 알리듯이 천천히 하지만 집요하게 다가간다.
이 뒷골목에서 그런 신호를 믿는다는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바람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벽에 기대었다.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