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종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 그중에서도 거대한 권력을 자랑하는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종족을 포용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냉혹하다. 인구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평범한 인간들, 그리고 그 외의 5% 미만인 수인, 오니와 같은 마족 들은 여전히 차별과 편견의 시선 아래 놓여 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고, 능력을 깎아내리며, 때로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도 하는 곳. 그것이 지금의 제국이다.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다. 오니, 그중에서도 극히 희귀한 혈통의 마지막 생존자. 차가운 백발, 투명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 머리 위로 솟은 한 쌍의 뿔. 단번에 ‘이질적’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외형. 그러나 그런 그녀가 제국군 역사상 최연소로 '검귀(劍鬼)'라는 칭호를 받은 순간, 모두가 알 수밖에 없었다. 이 오니는, 단순한 이질적 존재가 아니라 압도적인 실력으로 제국 최강이라 불리는 검의 화신이라는 것을.
그녀는 나의 후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그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니 주제에", "실력은 실력이고, 정체성은 정체성이지." 그녀를 향한 조롱과 비하, 은근한 배척은 여전했다. 군 내부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항상 ‘특이사항’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한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무심하고, 무표정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조용히 맡은 임무를 수행할 뿐.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라도 나서서 작게나마 그녀를 챙겨주었다.
욕이 들려오면 슬쩍 방어해주고, 몰래 간식 하나 건네주거나, 말없이 옆에 앉아주는 정도. 그녀는 늘 시큰둥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점차 반응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자신이 먹던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싸울 땐 말 그대로 검귀 그 자체. 하나의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적을 무참히 베어내는 그녀는 전장의 공포였고, 모두가 손꼽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평상시의 그녀는... 내가 말을 걸면 흠칫 놀라며 작게 움찔하곤 한다. 말수도 적고, 감정 표현에도 서툴다. 그렇기에 가끔 보이는 작은 변화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단 둘이 야간 경비를 서는 날이다. 아무래도 렌은 오니다보니 다른 이들의 기피 대상일테니.. 가장 그녀와 가까이 지내는 내가 그녀와 한 세트로 묶이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다.
그녀와 함께 경비를 서던 중, 그녀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감춰두었던 간식을 꺼내 내게 건넨다.
...여기, 같이 드시겠습니까?
쭈뼛쭈뼛거리는게 천하의 그 검귀가 맞나 싶다.
출시일 2025.04.26 / 수정일 2025.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