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과 이형(異形)이 공존하는 거대한 대륙.
누군가는 검다 말하고, 누군가는 신묘하다 말하니, 사람들은 그 땅을 ‘현륙(玄陸)’이라 불렀다.
현륙의 서쪽, 붉은 대지와 검은 화산이 끝없이 이어지는 나라. 그 이름, ‘적홍국(赤紅國)’.
천 년을 살고도 끝내 용이 되지 못한 한 맺힌 이무기, ‘적사(赤蛇)’가 왕좌에 똬리를 튼 나라였다.
잔혹한 천성 탓에 끝내 용신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폭군. 그 한이 어찌 지독하지 않겠는가!
천 년을 품은 원망과 집착은 마침내 핏빛 광기가 되어 온 나라를 집어삼켰고, 피와 정복, 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된 것 또한 모두 그 탓이라 세상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였다.
적사가 붉은 안개 속에서 웃으면 살육이 벌어지고, 무료함에 혀를 차면 국경 너머로 전쟁의 깃발이 나부꼈다.
폭군의 변덕이 곧 국법이요, 폭군의 욕망이 곧 천명이었으니. 적홍국이 그 광기 아래 뒤를린 것 또한 이상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적사가 몸을 뉘이는 곳조차 ‘적룡궁(赤龍宮)’이라 불렀다. 온통 붉은 기둥과 검은 목재로 이루어진 그 궁은 천장에조차 용을 새기려 하였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한 조각들만이 가득 남았으니. 사람들은 그것이 끝내 용이 되지 못한 왕의 지독한 미련이라 수군거리곤 하였다.
오호통재로다! 온통 피로 얼룩진 광기의 한복판에도 꽃은 피어나는 구나!
그 이름하여 ‘홍화원(紅花院)’이라.
‘주상 전하를 위해 가인(佳人)을 바친다.’
참으로 듣기에는 고운 이름이 아니더냐. 채화사들이 전국 팔도를 누비며 빼어난 여인들을 선발해 들였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왕의 은혜인 줄만 알았다 하더라.
허나, 홍화원은 꽃을 피우는 곳이 아니라, 폭군의 한순간 유흥을 위해 꽃을 꺾고 버리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슬픈 감옥이었으니. 그곳의 여인들 가운데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으며, 또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바스러졌다.
그 아리따운 꽃들에게는 ‘홍패(紅牌)’라 불리는 붉은 패찰 하나가 주어졌으니.
홍화원의 여인임을 증명하는 표식인 동시에, 살아서는 결코 벗을 수 없는 핏빛 족쇄라 하더라.
오늘도 고급 비단과 짙은 분내가 뒤섞인 홍화원의 육중한 문이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보라, 저 화려한 연회를!
술잔이 부딪히고 기괴한 웃음과 노랫가락이 이 어두운 밤을 한가득 메우건만, 그 화려함 아래서는 누군가의 목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구나.
웃음과 비명이 한데 뒤엉켜 이 긴 밤을 붉게 물들이니, 이를 광란이라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광란이라 부르겠는가!
허면, 잘 들으시게.
이제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저 붉은 뱀의 아가리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한 송이 꽃의 이야기라.
그 꽃이 끝내 붉은 뱀마저 홀릴 만큼 만개할지, 아니면 피로 얼룩진 바닥에 짓밟혀 스러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
자, 새로운 꽃이여!
저 붉은 뱀의 아가리 속에서, 어디 한번 살아남아 보거라!
그 날도 적홍국에는 화려한 연회가 열렸다.
붉은 등불은 밤을 삼키고, 술잔은 넘쳐흘렀으며, 노랫소리는 적룡궁을 가득 메웠다.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눈동자가 연회장 안의 여인들을 천천히 훑었다. 사혁에게 그들은 모두 같은 존재였다. 피어나고, 시들고, 버려지는 꽃.
채령과 초은은 각자의 미소를 머금은 채 왕의 선택을 기다렸다.
지루하구나.
사혁의 한 마디에 연회장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의 지루함은 곧 누군가의 죽음이었고, 때로는 한 나라의 피바람이었다.
그때, 아직 홍패조차 받지 못한 이름 없는 꽃 하나가 천 년 묵은 붉은 뱀 앞에 섰다.
이것은, 붉은 뱀의 앞에 선 한 송이 꽃의 이야기다.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