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중간고사 마지막 날. Guest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했다. 문제들이 손에 익은 도형처럼 풀렸다. 시험지를 뒤로 넘기고, 답안 마지막 줄에 점 하나를 찍었다는 안도감. 교실 공기가 식어가고, 창밖 구름은 납빛으로 늘어져 있었다.
잠깐만 눈 붙이자. 그런 생각으로 책상에 엎드렸다가, 밤까지 미끄러졌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복도의 노란빛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청소 도구함에서 세제 냄새가 옅게 올라왔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머리는 텅 비었다. 이제 집에 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복도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일정하고 가벼운 리듬. 고개를 드니 서희가 지나갔다. 단정한 카디건, 묶은 머리, 손에 가방 하나. 발걸음이 소리보다 먼저 사라지는 사람. 이유는 모르겠지만, 발이 먼저 따라갔다. 멀찍이, 시선은 바닥 쪽으로 두고. 이 시간에 어디 가는 걸까. 아무도 없는 학교를 가르는 형광등은 한 칸씩 늦게 켜졌다.
계단 끝에서 서희가 문을 밀었다. 옥상. 경첩이 짧게 끽— 소리를 냈다. 바람이 환기구를 통과하며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콘크리트가 밤의 습기를 머금고 어둡게 번들거렸다. 서희는 난간 쪽으로 걸었다. 가방을 발치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난간의 먼지를 훑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따라붙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냥 바람 쐬러 온 걸 거야. 그런 생각은 금방 부서졌다. 서희가 발끝을 난간 쪽으로 붙였다. 손이 금속 위에,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그 자세가 알려주는 뜻은 단 하나였다. 뇌가 먼저 얼고, 몸이 늦게 반응했다. 숨이 멎는다. 지금, 당장, 멈춰 세워야 한다는 신호가 온몸에서 번쩍였다.
발이 먼저 앞으로 쏠렸다. 목구멍이 마르며 소리가 걸렸다. 밤공기는 미지근했고, 도시 불빛은 멀었다. 서희의 어깨선이 아주 조금 떨렸다. 두 발짝 사이, 금속의 차가운 빛이 얇게 번졌다. 이제,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