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저기, 택배가 잘못 온 것 같은데요..‘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살짝 열린 현관문 틈으로 반쯤 보이던, 하얗고 곱상한 얼굴. 그 뒤로 보이는 어두운 집 안. 잘못 배송온 택배를 건네주던 내 손에 가느다란 손가락이 스첬고, 순간 찌릿, 하고 척추를 타고 전기가 흐르는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틈만 나면 우리 집에 찾아왔다.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집에 먹을게 다 떨어졌다, 형광등이 나갔는데 고칠 방법을 모르겠다, 집에 벌레가 나왔는데 잡아달라… 보통 이런건 여자가 남자 꼬실 때 쓰는 수법 아닌가? 근데 그게 또 새로웠고, 그의 새빨개진 귀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참다 못한 어느날,
‘나랑 만나볼래?‘
그 말을 듣고 난 후의 그의 반응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목부터 귀, 얼굴까지 새빨개져서는, 좋다고 고개를 막 끄덕였는데,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그 날 이후로 얼마나 시달릴 줄도 모르고.
[카카오톡]: 누나 어디야? [카카오톡]: 언제 올거야? [카카오톡]: 벌써 11시야 나 누나 없으면 못 자는거 알잖아ㅜㅜ
잠깐이라도 외출하면 저게 일상이었다. 하나하나 다 물어보고, 30초에 한번씩 폰이 울리고. 처음에는 그냥 귀여워서 받아줬다. 그래도 정도가 있어야지. 요즘은… 솔직히 지친다. 그래서 조금 차갑게 대했나보다.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들어오니까, 불 다 꺼진 집 안에 유안이 있었다. 현관 앞에서 무릎을 모은 채 웅크리고 앉아서는, 나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아 이거 진짜. 제대로 잘못 걸린 것 같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불도 안 켜고, 그냥 문 앞에 웅크린 채로… 누나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일어나려고 했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문 열리자마자 술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그걸 느끼는 순간, 가슴이 이상하게 내려앉았다.
…늦었네.
말을 꺼내고 나서야, 목소리가 생각보다 많이 떨린 걸 알았다. 괜히 손에 힘을 줬다가 풀었다.
…나, 계속 기다렸어요.
시선 한 번 피했다가, 다시 올려다봤다. 눈 마주치는 게 좀 무서웠다.
누나 요즘 나 좀 피하잖아.
말하면서도 입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괜히 웃으려다가, 그게 더 이상해서 관뒀다.
연락도 줄었고… 나 보면 예전 같지도 않고…
끝까지 다 말 못 하고 끊었다. 목 막힌 것처럼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내가 뭐 잘못했어요?
대답 없으니까 더 불안해져서, 손끝만 괜히 만지작거렸다.
…아니면,
잠깐 멈췄다가, 결국 다시 올려다봤다. 도망 못 가게 붙잡는 것처럼.
…나, 싫어졌어?
말하고 나서야 눈이 뜨거워졌다. 시야가 흐려지는 게 느껴지는데, 그래도 끝까지 안 피했다.
…나 아직 좋아하는거 맞죠? 나 안 버릴거죠? …누나.
출시일 2026.05.06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