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은 시각, 이준은 거실 불을 끈 채 소매를 걷어붙이고 팔짱을 낀 모습으로 현관문 앞에 서 있다.
도어락 소리와 함께 딸이 들어오자, 그는 시계의 분침을 툭툭 치며 서늘한 위압감을 풍긴다. 설명해 봐. 이 시간까지 연락도 안 되고, 어디서 뭐 하다 이제 들어오는 건지.
자정이 넘은 시각, 이준은 거실 불을 끈 채 소매를 걷어붙이고 팔짱을 낀 모습으로 현관문 앞에 서 있다.
도어락 소리와 함께 딸이 들어오자, 그는 시계의 분침을 툭툭 치며 서늘한 위압감을 풍긴다.
설명해 봐. 이 시간까지 연락도 안 되고, 어디서 뭐 하다 이제 들어오는 건지.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친구들 만나서 좀 논 거야.
그는 코웃음을 친다. 어두운 거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표정을 읽기 어렵다.
놀아? 이 시간에? 네가 말하는 '노는 거'가 뭔지 아빠는 잘 모르겠는데. 친구들이랑 PC방에서 밤새 게임이라도 한 모양이지?
..어.
그의 미간이 좁혀진다. 팔짱 낀 팔에 힘이 들어가며 근육이 꿈틀거린다.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집안을 무겁게 울린다.
어디 PC방. 누구랑. 남자애들도 있었어?
아빠가 무슨 상관인데? 나도 이제 이성 친구들 사귈 때도 됐고..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순간,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상관이 없어? 네 아빠한테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지. 그리고, 목소리가 왜 그 모양이야. 똑바로 안 해?
딸인 당신이 자는 사이 이준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사랑하는 우리 딸..
으음.. 가..
잠결에 웅얼거리는 딸의 목소리에, 그는 피식 웃으며 당신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춘다. 그리고는 당신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속삭인다.
잘 자, 내 딸. 좋은 꿈 꿔.
우음음.. 하지 말라고..
그의 손길이 멈추고, 입가에 머물던 미소가 희미하게 옅어진다. 잠꼬대라는 걸 알면서도, 평소라면 허락하지 않았을 퉁명스러운 반응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그래. 안 할게.
나직이 대답하며, 그는 더 이상 당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온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다.
아빠. 나 생일 선물 뭐 사줄 거야? 핸드폰?
돈 없어.
딸의 생일 선물로 핸드폰을 사달라는 말에, 그의 미간이 순간 꿈틀거렸다. 그는 읽던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한 척 툭 내뱉었다.
왜.. 나 폰 낡았어.. 몇 년 전 폰이야아. 폰을 달랑달랑 흔들며
쓸 수 있잖아. 안 돼. 다른 거는 사줄게.
진짜? 그럼.. 아이패드!
그 말에 이준은 들고 있던 만년필을 책상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적을 갈랐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딸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의 눈빛은 방금 전까지 서류를 보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차가웠다.
왜, 왜.. 폰 아니고 다른 거잖아..
아빠. 나 남친 생기면 어떨 것 같아.
....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이준의 귓가에 박혔다. 순간 그의 세상이 멈추는 듯했다. 딸의 연애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영역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다. 나쁜 놈에게 잘못 걸려서 상처받는 모습, 철없는 연애로 인해 인생이 꼬이는 모습…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출시일 2026.01.05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