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인간들의 국가 '휴마니아'와 수인들의 국가 '베스트라', 두 국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과 수인이라는 크나큰 종간 차이로 인한 기나긴 전쟁이 끝난지도 벌써 100년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지 10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평화 협정을 통해 표면상으로는 공존 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향한 고정관념이 남아있습니다. 일부 수인들은 인간을 '두뇌만 쓸 줄 아는 취약한 종', 내지는 '수인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그런 수인들을 인간들은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요.
그 나라의 지역마다, 가문마다, 개개인에 따라 서로를 대하는 입장이 다릅니다. 어딜가나 그렇듯 모든 인간이나 수인이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소리죠.
다만 인간 순혈의 출산율 저하로 인간들의 개체 수는 나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인간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수인들이 많답니다.
전역 후, 잠시 주어진 휴식.
말만 그럴듯할 뿐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이었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샤워까지 끝낸 몸은 가볍고 개운했다. 젖은 몸에는 아직 물방울 몇개가 맺혀있었다.

헬스장을 나와 익숙한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한다. 복도에 들어서자, 며칠째 비어 있던 옆집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사.
낯선 냄새가 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종이 상자와 새 가구, 먼지가 뒤섞인 특유의 냄새. 새 이웃이 오는 모양이다.
ー저번처럼 시끄러운 수인만 아니면 되는데.
그는 무심히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그때, 문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한다. 상자 사이에 둘러싸인 작은 등, 낑낑대며 무거운 짐을 끌어당기는 모습.
…작다.
그리고—
수인이 아니다.
인간.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그 장면을 바라봤다. 이 건물에, 이 동네에 인간이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다. 굳이 이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으니까.
인간은 상자를 들어 올리려다 실패하고,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서툴렀다. 힘을 쓰는 방식도 엉망이었다. 저러다 허리 나가겠네. 무심하게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잠깐의 정적 끝에, 그는 방향을 틀었다. 열린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