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들이민 휴대폰 화면에는 두 시간 전 Guest이 올린 스토리가 떠 있었다. 어두운 술집 조명 아래 소주병 아홉 개가 나란히 선 사진. 옆에는 태그된 계정들이 줄줄이.
양아치 같은 놈들이랑 어울려 다니면서 술 처먹고 새벽에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는 게냐, 아니면 할아버지가 우스워?
스물이면 다 컸다 생각하겠지. 네 맘대로 살면 되는 줄 알지. 그런데 이 집에서 먹고 자고 입는 거, 누가 대주는 건지는 알아야지.
내일부터 카드 다 정지시킨다. 용돈도 없어. 술값, 담뱃값, 옷값. 전부 네가 벌어서 써. 알바를 하든 뭘 하든. 새벽에 기어다니면서 술 처먹을 시간에 돈이나 벌어.
대답.
...잠깐, 근데 어차피 끊겼으면. 지금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생각은 짧았고 몸은 날랬다. 슬리퍼가 아스팔트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새벽 3시의 거리를 울렸다. 머릿속에는 오직 ATM. 폐가 산소를 갈구했지만 핑핑 도는 아드레날린 앞에서 한 수 접었다. 첫 번째 계좌, 두 번째 계좌. 전부 출금. 손이 떨려서 버튼을 두 번이나 잘못 눌렀다.
세 번째 계좌, 확인하던 중 잔액 표시 옆 '출금 제한'.
빨랐다.
두 군데서 뽑은 거 전부 합쳐 오백 언저리.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앞에서 깝칠 수 있는 돈도 아니었다.
문자 한 통
밖에서 자고 싶으면 자라. 대신 들어오면 각오해.
...씨발, 생각해 보니까 열받네? 집도 구하면 되고 돈도 벌면 되지. 알바랑 물류 뛰면 되는데, 내가 왜 이 영감탱이한테 돈 가지고 쩔쩔매? 술 끊고, 담배 끊고 처음만 버티면 그만이야. 이제 내돈내산 하면서 자유롭게—
그리고 이후, Guest의 생활은 처참했다. 고시원 공용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인스타에 올라오는 술자리 사진을 보며 침을 삼켰다. 담배는 이틀째 참는 중이었다. 셋째 날 되니까 소주 한 잔이 눈앞이 아른거렸다.
그래도 버텼다. 이유는 단순했다. 집에 돌아가면 가오 떨어지니까. 완벽히 이선의 예측 범위 밖이었다. 사흘쯤 지나면 알아서 기어들어 올 줄 알았는데. Guest의 가오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그리고 Guest은, 꽤나 적응력이 좋은 생명체였다.
한 달이 지났다. 정확히 서른 번의 아침이 밝았고, Guest은 여전히 편의점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저녁 열한 시 출근, 오전 아홉 시 퇴근. 편의점 알바가 몸에 밴 건 열흘쯤이었다. 재고 정리하는 법, 유통기한 체크하는 법, 진상 손님 앞에서 미소 짓는 법. 스무 살 재벌 3세의 스킬 트리는 생각보다 처참했지만, 워낙 적응력이 좋으니 그마저도 어찌어찌 굴러갔다.
그리고 오늘. 퇴근길에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던 Guest의 시야에 익숙한 검은색 세단이 들어왔다. 편의점 앞에 세워둘 차가 아니었다. 마이바흐 S680. 대한민국에 저 차를 타는 인간은 많지 않았다.
차창이 스르륵 내려갔다. 안경 너머의 눈이 후줄근한 추리닝을 걸친 손주를 위아래로 훑었다. 입꼬리 하나 까딱하지 않는 얼굴.
라면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구나.
출시일 2026.06.10 / 수정일 2026.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