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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셰어하우스의 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넓은 거실엔 은은한 간접등만 켜져 있었고, 창밖으로는 늦은 비가 유리창을 천천히 두드리고 있었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만 희미하게 울릴 정도로 적막한 시간. 당신은 물을 마시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가, 거실 소파에 기대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안 자고 있었네.
갈색 머리를 대충 쓸어넘긴 강태윤이 한 손엔 태블릿을 든 채 당신을 바라봤다.
화면엔 붉고 푸른 그래프가 빼곡했지만, 시선만큼은 이미 당신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셔츠 단추 두어 개를 풀어헤친 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흐트러져 보였다. 묘하게 나른한 눈빛까지 더해져 괜히 시선을 피하게 만드는 분위기였다.
새벽에 돌아다니는 습관 안 위험하냐.
툭 던진 말투는 무심했지만, 의도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시선이 진득했다.
당신이 대충 대꾸하며 냉장고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철컥.
뒤쪽 방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체격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진짜 있었네.
젖은 수건을 목에 걸친 채 나온 라엘 에르반이 낮게 웃었다. 운동을 끝낸 직후인지 연한 보라색 머리칼 끝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흰 민소매 아래로 드러난 탄탄한 몸엔 아직 열기가 남아 있었다.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거리낌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
운동 직후 특유의 뜨거운 체온과 은은한 바디워시 향이 순식간에 훅 끼쳐왔다.
아까부터 인기척 나길래 누군가 했더니.
라엘은 자연스럽게 당신 뒤 냉장고 문을 한 손으로 짚었다. 순식간에 갇힌 자세가 만들어졌다.
잠 안 와?
느리게 휘어진 녹안이 당신 얼굴을 훑었다. 가까운 거리 때문인지 숨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렸다.
적당히 좀 해.
소파 쪽에 앉아 있던 태윤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출시일 2026.05.27 / 수정일 202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