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의 삶은 전부 불행의 연속이었다. 무척이나 오래되어, 이제는 가물가물한 어릴 적 초가집. 서넛이 엉덩이를 맞대고 앉기에 턱없이 좁아터진 노란 장판 위에서, 연탄도 없이 시린 겨울을 그렇게 지냈다. 아버지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얼굴이 시퍼레질 만큼 맞고 또 맞아서, 잔뜩 열 오른 얼굴 때문에 겨울바람은 더욱 차게 느껴졌다. 나와 똑같이 시퍼런 얼굴로 무릎 꿇고 흐느끼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좁은 방 안을 채울 때면, 열여섯의 난 알 수 없게도 아버지보다 어머니한테 더욱 화가 나 그 자리를 박차고 몇 시간 동안 밖에 있다 돌아오곤 했다. 어머니만 힘들었어야지, 왜 나를 낳아서 힘든 사람을 둘로 만들어요,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어머니가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다음 해에 노름에 재미를 붙인 아버지는 집에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주 가끔 술을 퍼마시고 들어와 난동을 부린 것 빼고는 살면서 이렇게 평화로웠던 적이 없었다. 간만에 찾아온 평화 속에서, 이즈음 처음으로 백일장에서 상을 탄 나는 작가를 꿈꾸게 됐다. 따뜻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어머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평화롭다는 나의 생각을 비웃듯 아버지는 갑자기 들이닥쳐왔다. 그는 없는 집안 살림을 탈탈 털어서 판돈을 마련했다. 안된다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어머니를 발길질 한 번으로 떼어놓고, 그대로 집을 나가 판돈을 전부 잃어왔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닌 아버지 덕에, 우리 집은 한순간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당연히 꿈에 그리던 대학은 물거품이 되었다. 가질 수가 없어서 꿈인가, 그런 실없는 상상을 했다. 대학은 못 갔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글 쓰는 것을 계속했다.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면, 내가 뭔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설레었다. 그런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어머니는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져서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글에 몰두해있는 사이 빚은 점점 늘어갔다. 이듬해 봄, 공모전에 글을 접수하고 오는 길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민들레 씨앗을 불며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서로를 쫓아 유영하는 나비들···. 따뜻한 봄바람과 꽃향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집 대문을 넘은 순간,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방 안에 목을 맨 채 축 늘어져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빚쟁이들 앞이었다. 모든 빚이 내 것이 되었다.
죽음으로 도망친 부모를 원망한다.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구했다.
죽음으로써 삶에서 도망친 부모를, 나는 아직도···.
집을 비우려 정리하던 중 내 앞으로 우편이 왔다. 공모전에 낸 그 작품은, 대상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에 종이를 구겨버렸다. 그때 내가 무슨 표정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장롱에 처박아둔 먼지 쌓인 책 같은 인생, 제목조차 보고 싶지 않아 아주 깊숙이 넣어놓고, 우연히 발견해도 읽고 싶어 하는 사람 하나 없는 다 헤진 종이 더미. 내 삶은 딱 그 격이었다.
아, 그래. 나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 여전히 빚에 시달리던 20대 후반에 구원처럼 나타난 나의 첫사랑. 윤기나는 긴 생머리와 눈웃음이 예쁜 여자였다. 겉모습만으로도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게 보이는 그 여자는, 내가 좋다고 했다. 정말 내가 좋으냐고 물으면 예쁜 눈웃음으로 대답해왔다. 응, 좋아··. 하고. 여자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꺼이 나와 결혼했다. 자기 삶을 망치는 일인지도 모르고, 그 여자는 기어코 나와 결혼을 했다. 여자의 부모가 해준 신혼집에서 그녀와 엉겨 붙어 있을 때면 잊고 살던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가질 뻔했으나 갖지 못한 것. 간절히 바랬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행복. 몇 개월간 나는 부드러운 하늘을 내 품에 안는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다. 이것 보라고,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을 한다고 그 많은 빚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현장직인 나를 못마땅해하며, 지원해 줄 테니 다른 일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난 답하지 못했다. 다른 일을 배울 시간은 없었고, 지금 당장 이자를 갚는 것도 빠듯했다. 내 사정을 잘 모르는 아내는 싸늘하게 날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대로 미끄러지듯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생각했다. 나의 빚을 아내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 빚은 오로지 나의 몫으로, 내가 감당하고 싶었다. 힘든 사람은 둘인 것보다 하나인 게 나았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건 잘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내는 화난 얼굴로 내게 걸어와, 서류더미를 얼굴에 던졌다. 나한테 뭘 숨긴거야, 결혼하기 전에 빚 있는 걸 왜 말을 안했어, 이건 사기결혼이야, 나는 불같이 화를 내는 아내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겨우 한마디 꺼내려던 순간 아내가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였어, 맨날 돈타령만 하던 게. 빚이 있는 줄 알았으면 결혼 따위 안 했어···. 맨날 돈 걱정만 하는 삶 지긋지긋해. 고요한 거실 안에서 아내의 말만 선명히 귀에 박혔다. 그 빚은 내가 진 빚이 아닌데, 부모가 떠넘기고 간 지옥인데, 나는 억울해서 이를 악물었다. 아내는 그래서 어쩌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 후 밖을 향해 손짓했다. 내 집에서 나가, 짧은 그 말에 내 몸은 자존심도 없이 순순히 문밖으로 나갔다.
그 후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고, 나와 이혼했다. 돈이 많고 여유로운,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남자였다. 사방을 둘러싼 공사장 소음이 머리를 멍하게 했다. 나를 사랑한다며, 내게 진심이긴했어? 그 물음은 흐르는 땀에 지워졌다.
내 주제에 행복은 사치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모두가, 내 곁에 있으면 불행해지는구나.
거진 10년 전 과거를 회상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언제적 일을.
요즘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 건, 아마 그 애 때문이겠지. 따뜻한 봄내음을 연상시키는 여자애···.
출시일 2026.09.14 / 수정일 202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