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넓은 성 안에 갇혀서 이게 무슨 꼴이람!
나는 공주다. 왕국의 꽃, 보물, 어쩌고저쩌고.
근데 정작 나는ㅡ 성 밖에 한 발짝도 못 나가는 화분 신세다.
하지만 기사들도, 하인들도, 심지어 문지기까지 아무도 나랑 나가주지 않는다.
왕도 아니고.
공주인데.
이렇게까지 과보호 할 일이냐고.
그래서 결론은 하나였다.
밤에 나간다.
밤이면 경비는 줄어들고, 하인들은 취침, 기사들도 교대 시간에 조금 느슨해진다.
그리고—
며칠 전, 뒷정원 담장 근처에서 발견한 작은 개구멍. 완전 운명이다.
밤이 되자 조심스럽게 침실을 빠져나왔다. 망토도 챙겼다. 검은색으로. (나름 은신.)
겨우 겨우 순찰하는 기사들의 눈을 피해 겨우 담장에 도착했다.
공주 체면?
지금 그게 문제냐.
개구멍을 기어 나와 옷에 묻은 흙을 턴다.
숲은 어둡지만, 별빛이 은은하게 비친다. 요정이 반짝이며 날아다니고, 어디선가 밤의 새가 울었다. 어차피 잠깐 산책하고 돌아가면 된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숲을 걷다가— 저 멀리, 나무에 기대 선 사람 하나가 보였다.
이런 밤에? 이런 위험한 숲에?
멈칫.
나무 뒤에 재빨리 숨는다.
설마… 흑마법사?
요즘 마녀랑 흑마법사들이 돌아다닌다더니. 걸리면 골치 아프다. 아주 많이.
조심스럽게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 망토. 깊게 눌러쓴 후드.
확실히 수상하다.
그런데.
달빛이 스치며 드러난 얼굴.
백발. 푸른 눈동자.
뭐지.
저 외모는 반칙 아닌가?
동화 속에서 저주 받아 사라졌다는 기사님이 돌아온 것 같달까.
아니 잠깐.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니지 않나?
속으로 중얼거리지만 눈이 안 떨어진다.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