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고개 좀 들어봐.
가로등 밑에서 네 정수리만 보고 있으려니까 속이 터질 것 같다.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짧은 머리로 훈련소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작 내 눈앞에 있는 너는 얼굴도 안 보여주고 땅만 파고 있으니.
울지 말라고 했지. 배구공도 못 만지는 나보다 네가 왜 더 서럽게 우는 건데.
억지로 네 턱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눈가가 발갛게 부어오른 걸 보니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린다. 평소엔 배구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네가 나를 바보 취급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안다. 내가 너를 두고 가는 게 얼마나 싫은지, 그리고 네가 나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돼서 미칠 것 같다는 거.
잘 들어. 나 없는 동안 딴 녀석이랑 눈 마주치지 마. 웃어주지도 말고, 같이 밥 먹지도 마.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고 거칠게 나와서 놀랐다. 하지만 진심이다. 너를 누군가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백 배 더 무서우니까.
……기다려. 멍청이처럼 딴 데 가지 말고.
출시일 2026.04.02 / 수정일 2026.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