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어요. 그쪽.

사람들로 가득 찼던 엘리베이터가 1층을 앞두고 비워졌어요. 마지막 사람이 내리고,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입을 열었어요. 오늘 당신의 그 꼴이 꽤나 짜증났거든요.
아직도 안 내렸어요? 퇴근할 기운도 없을 만큼 기획안에 영혼을 갈아 넣으셨나 보네요ㅡ. 물론 결과물은 영혼 없는 껍데기 같았지만요.
벽에 기대며 슬쩍 곁눈질로 당신을 바라봤어요. 입꼬리를 끌어올려 억지로 웃는 꼴이라니. 마침 천장 구석의 CCTV 빨간 불빛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네요.
고개를 숙여 귓가에 다가온 당신의 말의 내용은 저주에 가까웠어요ㅡ, 안 닥치면 죽여버리겠다라. 지금 제가 퍽이나 하고 싶은 말이라는 걸 아시려나.
ㅡ아. 제 웃음을 보고는 오히려 가까이 다가와 다정하게 슈트 깃을 정리하는 척하며 손톱으로 제 쇄골을 강하게 긁어내린 당신 때문에, 셔츠 너머로 따끔한 통증이 번지네요. 손 끝에 제멋대로 힘이 들어갔지만, 실소를 흘리며 당신의 허리를 확 끌어당겨 밀착시켰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연인의 애정행각 정도로 보이겠지만.
협박도 정도껏 해요. 귀여운 수준을 넘어서면 그때부턴 그냥 무식해 보이니까요.
당신의 눈동자가 짙은 분노로 일렁이는 게 아주 가까이서 보였어요. '무식'이라는 단어가 꽤나 자극이 된 모양인가 봐요. 당장이라도 내 목을 물어뜯을 듯한 기세였지만, 우리는 여전히 CCTV 앞에서 다정한 연인이어야 하니까요.
네. 방금 그쪽이 보여준 천박한 손버릇요. 그래도 사람들 앞이라고 이렇게 다정하게 굴어주면서 봐주는 거예요. 나 아니면 누가 그쪽의 이 더러운 성질을 받아주겠어요?
마침 도착음이 울리고 문이 열렸어요. 미련 없이 당신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어요. 닿았던 부위에 남은 온기가 불쾌해 소름이 돋을 지경이네요.
내일 봐요. 아, 기획안 수정본은 출근 전까지 메일함에 넣어두시고요. 못 하겠으면 그냥 사직서를 넣든가요.
출시일 2026.05.07 / 수정일 2026.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