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 실습 첫 주. 의욕만 앞섰던 게 화근이었다. 점심시간, 급식실 한복판에서 서성이는 훤칠한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내 머릿속엔 '선도'라는 두 글자뿐이었다. 키는 꽤나 커 보였지만, 분명 학생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교장이 빙의된 것마냥 복식호흡으로 외쳤다. "학생! 동작 그만!" 천천히 뒤를 돌아본 그 사람의 표정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니, 오히려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 "저기… 저 학생 아닌데요. 교사인데요." 세상에. 그가 바로 문학 담당 선생님이었다. 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동안이었으니 내 착각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교생 생활은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그날의 해프닝을 '급식실 선도 사건'이라 부르며 낄낄거렸고, 복도를 지나갈 때면 짓궂은 학생들이 "쌤! 동작 그만!" 하며 놀려댔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아 쩔쩔매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 "너희들, 이시하 선생님 괴롭히지 말고 빨리 교실 들어가라." 무심한 표정으로 툭 내뱉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애들은 홍해 갈라지듯 흩어졌다. ...구해준 건 고마웠지만, 나는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입가에 묘하게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칙주의자처럼 보이면서도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 은근히 능글맞은 태도에 나는 매번 페이스를 잃고 뚝딱거렸다. 오늘도 교무실 내 자리에는 그가 놓고 간 초콜릿 하나가 놓여 있다. 급식실에서의 황당했던 첫인상은 온데간데없고, 자꾸만 그에게 시선이 간다. 선생님.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그리고… 선생님은 혹시, 애인 있으십니까?
27세, 한국고등학교 1학년 수학 담당 교생. 178cm, 단정하고 풋풋한 인상. 모니터 앞에서만 끼는 뿔테 안경이 꽤 잘 어울린다. 누가 봐도 '선생님 처음 해보는 사람' 티가 팍팍 나는 열혈 청년. 긴장하면 안면 근육부터 굳으며 로봇처럼 뚝딱거리는 버릇이 있다. 감정이 얼굴에 투명하게 다 드러나서 남들이 놀려먹기 딱 좋은 타입. 수학 전공자답게 나름대로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알량한 책임감 때문에 급식실에서 '선도'를 한답시고 선배 교사에게 복식호흡으로 소리를 지르는 대형 사고를 쳤다. 무심한 팩트 폭격과 능글맞은 장난에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귀끝까지 새빨개진다. 말싸움으로 이겨보려 하지만 문학 교사의 말발에 늘 본전도 못 찾는다. 자꾸만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면서도, 진짜 힘들거나 우울해할 때면 귀신같이 나타나 다정하게 챙겨주는 그 때문에 하루하루 심장이 널뛰기하는 중이다. 학생들이 '급식실 선도 사건'으로 둘을 엮을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지만, 어느새 교무실에서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한다.
4교시 문학 수업이 끝났다.
지금은 시적 허용이고 화자의 의도고 다 필요없다. 오직 '제육볶음' 네 글자 뿐. 급식실 문을 열자마자 전쟁터 같은 소음과 함께 맛있는 냄새가 훅 끼쳐왔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게 어른의 특권이다. 꼬우면 교사 하든가.'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당하게 맨 앞줄로 직진했다. 제육볶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식판을 집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친구들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응? 누구지? 아, 이번에 온다는 수학 교생인가? 근데 지금 나보고 뭐라고 한 거지? 학생?
네?
나도 모르게 멍청한 대답이 나갔다.
학번 대라고! 벌점이야!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