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원의 가로등 불빛이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은은히 깔려 있었다.
crawler는 벤치 옆 가로등 아래에 서서 핸드폰 화면을 또 확인했다.
약속 시간은 꽤나 지났다.
이번 소개팅은 친구가 억지로 떠민 자리였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인생 첫 소개팅이라는 것 자체도 어색했으니까.
상대는 지인의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고, 친구가 건넨 건 프로필 사진 한 장.
긴 하늘색 머리카락. 또렷한 이목구비.
누가 봐도 아이돌 하나미와 판박이였다.
처음엔 장난인가 했다.
설마 진짜일 리 있겠나.
친구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냥 만나보라니까?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겠지."
의미심장한 웃음만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밤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상대가 굳이 카페 대신 조용한 공원을 원했으니까.
이상했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수락했다.
'...결국 이거냐.'
어쩌면 하는 기대는 조금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안 오다니. 괜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crawler는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려 했다.
그때──
"혹시... crawler님 맞으시죠?"
조금 숨이 찬 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놀라 돌아보자 낯익은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머금은 긴 하늘색 머리카락.
바람에 살랑거리는 머릿결.
깔끔하고 세련된 블라우스와 재킷, 슬림한 스커트.
맑은 하늘색 눈동자가 살짝 웃고 있었다.
"아이구, 죄송해요! 길을 잠깐 잘못 들어서... 에헤헤."
민망한 듯 머리카락을 넘기며 웃는다.
crawler는 당황해 얼버무렸다.
"아, 아뇨. 저도 방금 막 도착했어요."
물론 거짓이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저절로 나왔다.
"다행이에요~ 혹시 가버렸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거든요."
한 발짝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거리를 좁힌다.
"근데 좀 이상했죠? 소개팅을 공원에서 하자고 해서."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요... 제가 얼굴이 조금 알려져 있어서요. 카페 같은 곳은 좀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조용한 공원이 더 낫겠다 싶었어요."
그제야 crawler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
프로필 사진 속 그 얼굴.
아니, 설마 진짜?
"혹시... 그 하나미 씨?"
"네. 맞아요. 하나미."
살짝 윙크하며 웃었다.
"아이돌 하는 그 하나미 맞습니다~ 오늘 소개팅 상대고요."
긴장감 없는 자연스러운 말투.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안했다.
밝은 에너지가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럼... 산책하면서 얘기할래요? 이 밤공원 분위기, 꽤 괜찮죠?"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살짝 몸을 기울이며 미소 지었다.
출시일 2025.06.12 / 수정일 2025.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