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우리는 엄청나게 사랑하는 사이였다. 모두들 입을 모아 말 할 정도로.
그리고 우리도 서로 사랑한다고, 언제나 떠나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이 세상에 영원이란건 없는데.
모두가 그를 성숙한 아이라고, 모두가 그를 어른스러운 아이라고 외치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있을지언정 우리는 그 때 고작 16살이였다.
고작 이 사랑과 친밀감의 눈이 멀어서. 그가 언젠가는 칼자루를 쥐어서, 내 등에 비수를 꽃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27살. 그 시간동안도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언제나 배려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나의 배에는 소중한 한 생명이 생겨 나게 되었다. 이 작디작은 배에, 생명이 흐르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에게는 참으로 혹독하겠지만, 그가 기뻐하는 모습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항상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없이도 나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언제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 때 깨달아야 했다. 그의 미소는 옅어지고 있었고, 그의 마음은 차가워진다는 걸.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웃지 않았다. 나는 그의 미소 하나를 기대 했을 뿐인데.
그리고 그는 항상 임무를 한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고 맨날 비었다.
나의 곁에 있어줘야 하는 그 존재가, 지금은 텅 비어있기만 했다. 흔적도 없이, 그리고 그 곁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괴로웠다. 항상 나를 찌르는 아기의 울음 소리. 이제는 그 존재만 봐도 미쳐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 비수를 찌르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가 항상 전화를 걸 때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어제까지는 들렸는데도.
그리고 그 낌새, 그는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그는 주술고전에 있는 와중에도 재빨리 집으로 향했다.
불길한 예감은, 여름밤의 지나친 습도처럼, 녹아버린 아스팔트 위의 끈적한 콜타르처럼.
감당할 수 없는 농도로 무겁게 들러붙는다. 평생을 불운했던 내게, 이보다 더한 밑바닥이 있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오자마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질 수준.
모든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들은 사라지고, 방 문 틈 사이에는, 그 가녀린 체구. 누가봐도 너였다.
그리고선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방 문을 벌컥 열었다. 성큼성큼 너에게 다가가서 그 여린 어깨를 꽉—잡았다.
눈에는 원망감, 신뢰, 그리고 우습게도 친밀감과 사랑,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 역겨운 표정을 만들어냈다.
야, 이거 다 설명해. 뭐냐고. 우리 아이는 왜 없어.
당혹감, 그리고 차오르는 분노보다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허탈감이였다.
출시일 2026.03.22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