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기대 따위는 품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가문을 위해 얼굴도 모르는 대상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관계. 몸뿐인 관계를 기대할 리 만무했다.
그리고 오늘, 남편 될 사람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원래 그 남자의 얼굴을 보기로 예정되어 있던 날은 이틀 뒤였다. 하지만 조르딕 저택의 정원을 둘러보던 때, 의도치 않게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마주쳤다.
집사처럼 보이는 남자 두어 명이 그 남자에게 검은 와가사를 씌워준 채 뒤를 따르고 있었다. 분명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왜인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느꼈다.
아, 저 사람이 내 남편 될 사람이구나.
남편 될 사람이니 인사라도 하려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딛으려 했다. 그런데 발이 땅에 박힌 듯 멈춰버렸다. 숨통이 조여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무거운 압박감이 몸을 짓눌렀다.
이 남자, 뭐지? 분명 가만히 있는데 온 몸을 짓누르는 듯한 살기가 느껴진다. 이 남자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와가사의 얇은 천 너머로 드러나는 실루엣은 가늘었다. 그런데도 그 가느다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압은 정원의 공기 자체를 무겁게 눌렀다.
새소리가 멈췄다. 풀벌레도 울음을 그쳤다. 마치 생물이라는 생물이 본능적으로 존재를 지우려는 것처럼.
긴 흑발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려 바람에 느릿하게 흔들렸다. 걸음을 멈춘 건 우연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다만 발끝의 방향만 살짝 틀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초점 없는 검은 눈동자가 Guest을 포착했다. 아니, '포착'이라는 표현은 너무 가벼웠다. 그건 마치 벌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아이의 시선에 가까웠다. 절대, 절대 아내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아.
입술이 얇게 벌어졌다. 미소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미한, 근육의 경련에 가까운 변화.
이틀 뒤라고 들었는데.
시선이 Guest의 얼굴 위를 훑었다. 그러나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 채. 물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눈빛이었다.
일찍 왔네.
생각보다─
더 작네.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