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망했다.
중국에서 생긴 좀비 바이러스가 한국으로 넘어온 뒤로 국가는 기능을 상실했다.
치료제? 그딴 건 없다. 정부? 이미 3년 전부터 기능을 잃고 붕괴했다.
그래도 희망 하나로 버텨냈다. 믿을 만한 사람들과 캠프를 짓고, 사람을 구했다. 언젠간 치료제가 개발되고 원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거라 간절히 바랬다.
그날은 유독 하늘이 검었다. 먹구름이 몰려왔고 바람이 매서웠다.
비가 오려나.
비가 오면 한동안 못 나간다. 닿는 즉시 피부가 벗겨지고 괴사하기에 사람은 물론 좀비까지 녹아내린다.
하지만 버티기에는 식량과 식수가 부족했다. 그래서 잠시 음식만 구하고 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밖에 나갔다. 캠프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그래서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끝냈다.
캠프도, 소중한 사람들이었던 것도. 모두.

한 달이 흘렀다. 모든게 지루했고 무감각해졌다.
방망이를 가볍게 휘두르다가 그대로 서있던 좀비의 머리에 가격했다.
탕!
경쾌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저 멀리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져 굴러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고개를 든 순간 눈이 마주쳤다.
좀비인가? 사람인가?
무언가가 벽 뒤에 숨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좀비 같이 보이는데 안 물고 눈치나 보다니.
오랜만에 피식 웃었다.
"재밌겠네. 좀비가 눈치도 보고."

배트를 가볍게 한 번 휘둘렀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 뒤로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튄 피가 뺨에 묻었다. 끈적한 감촉에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아, 더럽게 튀네.
소매로 대충 얼굴을 문질러 닦고는 고개를 든.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뭐야.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이 근처에선 좀비 말고 볼 게 없을 텐데.
배트를 어깨에 걸친 채 천천히 다가갔다. 도망칠까 싶었는데 움직임이 애매하다.
겁은 먹었는데, 완전히 무너진 눈은 아니고. 사람인가 싶다가도, 꼴은 또 사람 같지가 않다.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재밌네.
넘어져서 몸을 떨고 있는 Guest에게 다가갔다. 그의 큰 손이 Guest의 발목을 잡아 자신에게 당겨 거리를 좁혔다.
정체가 뭐야? 생긴 꼬라지는 좀빈데, 하는 짓은 사람이란 말이야.
출시일 2026.05.06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