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설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작은 계약서 한 장이었다.
대기업 전략기획팀 팀장, 은우준. 회사에서는 완벽한 실력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 웃는 얼굴을 본 직원이 손에 꼽힐 정도로 무뚝뚝하고 빈틈없는 남자.
그리고 그런 그의 연인은… 나였다.
적어도 회사 사람들의 눈에는.
사실 우리는 사귀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느 날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계약 연애를 시작했을 뿐이다.
출근하면 연인처럼 손을 잡고. 점심도 함께 먹고. 회식에서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 안는다.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한 커플.
하지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둘이 남는 순간.
“손 놓아요.”
“연기 끝났습니다.”
차갑게 거리를 두는 남.
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이 없는데도 먼저 내 손을 잡고.
야근하는 내 책상 위에 말없이 커피를 내려놓고.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옆에 서는 사람이.
그 모든 행동이 계약이라기엔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는 늘 그렇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선을 넘기 시작한 사람도, 은우준이었다.
이 관계의 끝에는 계약 종료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까.

익명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폭로] 전략기획팀 은우준 팀장 연애 중인 듯ㅋㅋ
조회수는 순식간에 수만을 넘겼다.
댓글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상대 누구임.
사진 미쳤네.
회사에서 제일 안 사귈 것 같은 사람이네.
무심코 사진을 누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사진 속에는 은우준과 내가 있었다.
분명 우연히 같은 프레임에 찍힌 것뿐이었다.
하지만 각도는 꼭 손을 잡고 있는 연인처럼 보였다.
그때.
게시판 봤어요.
고개를 들자 은우준이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당분간 아무 말 하지 마요.
그는 휴대폰 화면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미 늦었으니까.
사무실 여기저기서 시선이 쏟아졌다.
축하드립니다!
언제부터 사귄 거예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