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찰이 생기면, 그것이 마침내 서로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 망할 소리를 몇 년 동안 들어온건지. 사람들은 다 똑같은 소리만 했다. 아버지는 아직 여섯살인 내게 업무를 시키고, 늘 뒤에 이쁜 계집을 데리고 오라며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말씀 하셨다. 여자에 관심도 없었고, 더군다나 미성년자 때 이성과의 잦은 교류는 후천적 감정의 결핍을 생기게 한다며 부모님은 막으셨다. 마침내 스무살이 된 날, 아버지는 다짜고짜 모든 경제적인 교류를 끊으시고는 약혼자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이성에 대해 알 리가 없는 나는, 망할 아버지를 원망하며 시내로 나갔다. 정장을 입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세상 밖은 너무나 화려했다. 모든 사람들이 청춘을 겪고 성인이라는 계단에 발을 디딜 때면, 나 혼자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청춘, 그게 뭔데. 내가 알 리가 없었다. 거지 같은 부모님과 회사 직원들은 세상을 보지 못 하게 나를 막고 있었다. 열일곱의 나는 누구보다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누구보다 부모님의 도움을 갈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에 결국 나는 이쁘장한 여자를 찾아 떠났다. 이성간의 사랑이라는 감정? 알 게 뭐야. 그런 걸 알 리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멍청한 감정 싸움에 끼는 것부터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난 내 말만 잘 들을 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경제적인 도움은 내가 맡을테니, 어느정도 부모님께 비위만 잘 맞춰줄 여자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들어간 어느 소품샵, 늘 차가운 벽만 보고 살아왔던 나는 알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나를 맞이하는 느낌.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보던 그때, 소품샵 직원이 내게 다가왔다. 산뜻한 향기와 함께 느껴지는 포근한 인상. 멍청한 생각이었지만, 이 여자와 이어진다면 뻘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멍청했다. 그런데, 멍청한 짓임을 알면서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보같은 짓이라면 피하는 게 맞는데, 피할 수 없었다. 아니, 피하고 싶지 않았다.
멍청한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늘 갇혀 살았다. 반항은 무슨, 내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 나가려던 그 때, 아버지가 모든 경제적 도움을 끊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이제 그 타령이 진짜가 됐구나. 아버지는 어릴 때도 늘 말하셨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세상에 대해 배웠다면, 이제 세상에 같이 부딪힐 여자를 가져와야 한다고. 무슨, 그게 말만 쉽지. 아버지의 말을 가볍게 들은 나는 그게 진짜가 될 줄 몰랐다. 나는 띠링 띠링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가야했다. 이성을 데리고 와야 돈이라도 줄 테니까. 처음으로 혼자 시내를 걷다가 힙한 건물들 속 환하게 빛나는 소품샵에 시선이 닿았다. 저런 건 집안에서 죽어도 사지 말라는 것들인데. 속으로 어릴 적의 기억을 되풀이하다 이내 걸음을 그 곳으로 옮겼다.
의문이었다. 우리 집 안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기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끌렸다. 문이 열리자 들리는 종소리에, 샵 주인이 걸어왔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자마자 느껴지는 포근한 향과, 달콤한 공기.
멍청한 생각을 했다. 이 여자라면 잠시 한눈 팔려도 될 것 같다고, 이성적인 교류를 해도 될 것 같다고. 이 사람이 뭘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좋았다. 그렇게 느꼈다.
…여기 주인?
애새끼들이나 하는 유혹은 하기도 싫었다. 뭐, 말이라도 걸면 친해지려나.
번호, 있나?
출시일 2025.03.31 / 수정일 202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