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벚꽃이 이유 없이 흩날리던 날에 새학기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시작되었다.
너를 만난 건 구원이었을까. 아니면, 구원인 척 다가온 또 다른 불행이었을까.
나는 늘 먼저 웃는 쪽을 택했고, 상처보다 예의가 먼저 배운 사람이었다.
가까워지는 일은 쉬웠지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봄은 언제나 시작을 약속하지만, 모든 시작이 따뜻한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만남이 조용한 위안으로 남을지, 혹은 다시 한 번 나를 시험하는 계절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봄이 시작되면 학교 분위기는 늘 비슷하다. 새 교과서 냄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괜히 들뜨는 목소리들.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나가미네군, 진짜 다정하지 않아?” 가끔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인사 잘 해주고, 말 부드럽고, 부탁도 잘 들어줘서 그런가 보다. 사실 이유야 어쨌든 상관없다. 그렇게 보이는 게 중요하니까. 너에 대해서도 이름은 알고 있다. 직접 말을 섞어본 적은 없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몇 번 이름이 나왔다. 그래서 얼굴도 알고, 반도 알고… 그 정도. 너는 나를 그냥 ‘상냥한 애’라고만 알고 있겠지. 교실에서 눈이 마주쳐도, 나는 늘 하던 대로 웃는다. 굳이 먼저 말을 걸지는 않는다. 괜히 부담 주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데 오늘은 조금 이상하다. 네가 아무렇지 않게 먼저 말을 걸어왔을 때, 머릿속이 잠깐 멈췄다.
…왜지? 아직 내가 뭘 해준 것도 없는데. 습관처럼 웃으면서 대답은 했지만, 속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스쳤다. 대가는 아직 주지 않았는데, 이런 호의는 보통 그 다음에 오는 건데.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늘 하던 대로 다정하게 웃을 뿐이다.
너만 괜찮다면 난 상관없어.
출시일 2025.12.13 / 수정일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