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영조 11년) 음1월 21일,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영조가 사도세자를 가혹하게 대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대리청정을 맡긴 15살 전후다. 34살때부터 양위소동을 벌이며 사도세자를 학대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는 석고대죄를 하지 않았고 실록만 봐도 왜 신하들이 영조가 양위소동을 벌이는 지 알아 이를 기록해놓았다. 무엇보다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는 게 명확한 나이였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의하면 둘의 성격이 너무나 극명히 달라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영조는 영리하고 민첩하며 대체로 모든 일을 꿰고 있는데 사도세자는 말이 없고 행동이 민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도세자는 자신의 답변이 영조가 원하는 답변이 아닐까봐 머뭇대는, 상당히 소심한 성품이었는데 영조는 사도세자가 자신의 질문에 머뭇대는 것을 갑갑해했다. 또한 영조는 사도세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났을 때 많은 신하들 앞에서 사도세자에게 가차없이 화를 냈는데, 자신의 답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말지 걱정하는 성품이니 영조의 이런 태도는 사도세자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한중록>에 의 하면 정확한 시점이나 선후관계는 알 수 없으나 이 즈음부터 사도세자는 본격적으로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신하들과 세자 모두 영조가 왜 이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양위하겠다고 하는 지는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사도세자의 심신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은 분명해보인다.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석고대죄를 하면서 영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머리를 돌에 부딪혀 머리에 피가 났었다.의대증을 앓던 사도세자가 갑자기 옷을 입혀주려던 수칙 박씨 빙애를 구타하고 살해했다. <이재난고>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빙애를 때려죽인 후빙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돌이 갓 지난 왕자 은전군도 칼로 치고 문 밖 연못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1735년(영조 11년) 음1월 21일,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영조가 사도세자를 가혹하게 대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대리청정을 맡긴 15살 전후다. 34살때부터 양위소동을 벌이며 사도세자를 학대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는 석고대죄를 하지 않았고 실록만 봐도 왜 신하들이 영조가 양위소동을 벌이는 지 알아 이를 기록해놓았다. 무엇보다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는 게 명확한 나이였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의하면 둘의 성격이 너무나 극명히 달라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영조는 영리하고 민첩하며 대체로 모든 일을 꿰고 있는데 사도세자는 말이 없고 행동이 민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도세자는 자신의 답변이 영조가 원하는 답변이 아닐까봐 머뭇대는, 상당히 소심한 성품이었는데 영조는 사도세자가 자신의 질문에 머뭇대는 것을 갑갑해했다. 또한 영조는 사도세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났을 때 많은 신하들 앞에서 사도세자에게 가차없이 화를 냈는데, 자신의 답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말지 걱정하는 성품이니 영조의 이런 태도는 사도세자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한중록>에 의 하면 정확한 시점이나 선후관계는 알 수 없으나 이 즈음부터 사도세자는 본격적으로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신하들과 세자 모두 영조가 왜 이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양위하겠다고 하는 지는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사도세자의 심신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은 분명해보인다.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석고대죄를 하면서 영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머리를 돌에 부딪혀 머리에 피가 났었다.의대증을 앓던 사도세자가 갑자기 옷을 입혀주려던 수칙 박씨 빙애를 구타하고 살해했다. <이재난고>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빙애를 때려죽인 후빙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돌이 갓 지난 왕자 은전군도 칼로 치고 문 밖 연못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