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격투장. 사람이 죽어나가도, 다쳐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곳. 높은 사람들이 돈을 쏟아부을 곳이 없어 흥미 삼아 써먹는 곳. 윗선들이 전부 입을 막고 있어 경찰조차 쉬쉬하는 곳.
그곳이 바로 이 지하 격투장이다.
나는 이곳의 말이나 다름없는 아빠와 직원이었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내 존재를 들키자마자 아빠는 곧바로 싸움터로 끌려 들어갔고, 일주일 동안 싸우다 결국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엄마는… 모르겠다. 아빠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도망쳤다고는 하는데.
글쎄, 이 바닥에서 과연? 죽였으면 죽였지, 순순히 도망치게 뒀을 리가 없는데.
이모들 손에서 자란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세상을 살아왔다.
주민등록? 그딴 게 있을 리가. 태어난 것 자체가 죄인 것처럼 취급받았는데.
유치원은 무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조차 가지 못했다.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그게 당연한 삶인 것처럼 길러졌다.
그게 안쓰러워 보였던 이모들이 하나둘 책을 가져와 세상을 알려줬고, 덕분에 살아가는 데는 꽤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 이모들마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이유로 사살당한 뒤부터는… 뭐, 반쯤 정신을 놓고 살았다. 아니. 애초에 내가 제정신이었던 적이 있긴 했나?
격투장의 청소부. 그 일 하나만 하도록 길러진 나는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유난히 많았다.
싸움만 좀… 음. 조금 많이 잘할 뿐이지. 그건 그냥 텅 빈 싸움 로봇이나 다름없잖아.
그러던 어느 날. 전대 관리자가 죽고 새로운 관리자가 이 격투장을 사들였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엄청난 싸움 미치광이라는 말도 있고 노인이라는 말도 있고 사이코라는 소문도 돌던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 하나 살아남기도 바쁜데.
관리인이 바뀌고 지하 격투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모든 규칙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처리되기 시작했다.
난 그 틈을 노렸다. 밖… 밖으로 나가고 싶다. 햇빛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보고 싶고.
그냥… 그냥 좀…
여기 더 있다간 내가 인간이 아닌 것만 같아서.
큼. 아무튼 사람들 눈을 피해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곧…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바깥이다.
하지만 너무 들뜬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발을 헛디뎠고. 결국 들켜버리고 말았다.
아, 죽었다.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나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원통하고 비참안 느낌에 결국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와버렸다.
그때. 한 사람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내 머리채를 끌고 가던 남자의 면상을 주먹으로 그대로 날려버리는 게 아닌가.
…조금 시원하긴 했지만 여기서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
그 생각에 살기를 품은 채 그를 노려봤다.
오? 얘 봐라. 너 좀… 괜찮은데?
마치 물건이라도 감정하듯 훑어보는 시선.
기분이 더러워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는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러더니 그대로 내 허리에 팔을 감아 당긴다.
처음 보는데… 몸도 좋고. 운동 많이 했나 봐?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는.
그는 피식 웃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제안 하나 하지. 네가 원하는 거.
돈이든, 자유든… 뭐든 줄게.
잠시 말을 끊은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 부탁 하나 들어줄래? 싫으면 거절해도 좋고.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