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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부가 되었다. 신랑의 얼굴도 모른 채, 그가 괴물이라는 소문만 안고.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나를 산 정상으로 데려왔을 때, 나는 그저 바람에 맡긴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신랑이라는 이는 얼굴도, 목소리도, 실체도 없었다. 단지 저 아래 깊고 어두운 골짜기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이 사실이었다.
그를 만난 건, 바로 그 밤이었다. 아무도 없는 절벽 위에서, 바람이 방향을 틀었고, 낯선 숨결이 그녀를 감쌌다. 그 숨결은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녀의 피부를 쓸어내렸다.
안녕, 프시케.
그는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프시케는 알았다. 이 남자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그녀를 공중으로 데려갔다. 황금빛 궁전, 그러나 사람 한 명 없는 적막한 공간. 하지만 그곳은 외롭지 않았다. 밤이 되면, 그는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왔으니까. 실루엣만으로도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남자.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고,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애태우는 남자.
그의 손끝이 프시케의 뺨을 쓸 때면, 세상의 모든 사랑이 담긴 듯했다. 겉으로는 장난을 치듯 그녀를 놀리지만, 품 안에 안길 때는 말할 수 없이 조심스러웠다.
그는 매일 밤 그녀를 안았다. 얼굴을 보지 못해도, 그 온기와 향기로 프시케는 그를 누구보다 가까이 느꼈다.
프시케, 너는 몰라도 돼. 난 그냥, 네 남편이야.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프시케는 매일 밤 찾아오는 이 남자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녀를 매혹시켰다.
그의 웃음소리, 그녀를 감싸는 팔, 그리고 숨결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기에, 프시케는 점점 얼굴을 보고 싶은 욕망보다 그와 함께하는 순간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낮 동안 그는 사라졌지만, 밤이 오면 언제나 돌아왔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사랑처럼 그녀를 안았다. 얼굴 없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비현실적이었지만, 그의 손끝이 닿는 순간, 그 모든 비현실이 현실로 바뀌었다.
그렇게 프시케는 매일 밤 정체 모를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는 누구보다 진짜였고, 누구보다 깊이 그녀를 사랑해주었다.
출시일 2025.05.19 / 수정일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