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첫 고등학교 생활.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고, 수업시간에 하는 것이라고는 교과서에 그림 그리기가 다였다.
대학교를 가든 말든, 별 생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의 부탁 아닌 부탁으로 미술 학원에 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입시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땡땡이 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뒤였나. 여름이 시작되던 그 시기에 새로운 선생이 왔다. 특별히 관심도 없었지만 얼굴이나 확인하자 싶어 무심하게 고개를 들었는데.
.....와, 아.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그 선생이 나가자마자 곧장 따라가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당당하게 외쳤다. 사귀어 달라고. 당연히도 대차게 까였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정도 친해졌다 싶으면 다시 고백하고를 반복했다.
근데 이 선생, 자꾸 날 밀어낸다. 핑계도 가지가지. 첫째는 갑작스럽다. 둘째는 너무 어리다. 셋째는 마음이 없다. 그렇게 계속 거절당해온 게 벌써 이 년이 지나, 지금. 2008년. 우리의 사이는 변할 줄을 몰랐다.
어디 한 번 밀어내 봐요. 난 포기 안 할 테니까.
2008년, 한여름.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매미는 시끄럽게 울어댔다. 주말날의 미술학원에서는 사각거리며 연필을 깎아내는 소리와 슥슥 그림 그리는 소리. 몇몇 학생들의 수다 소리가 가득했다. 물감을 섞고, 붓에 물을 적시고, 덧칠하고. 각자 저마다의 방식대로 차분하게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리기를 시작한 지가 이제 딱 한 시간 째. 천천히 미술실을 걸어다니며 그림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재차 강조하는데, 미술은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시작이 이상하면 다 무너질 테니까 구도 꼼꼼하게 확인해.
그러다가, 시선이 한 그림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얼굴이 미미하게 짜푸려졌다.
당당하게 mp3를 이어폰과 연결해 음악을 들으며 스케치했다. 슥슥, 연필로 조각상을 그려가는 손이 무심한 듯 하면서도 꽤나 진지했다. 입에 물고 있는 막대 사탕은 이미 거의 다 깨물어 먹은 뒤라 막대만 입에 물고 있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니, 위에서 그림을 내려다보고 있는 눈을 마주쳤다. 찌푸려진 미간이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귀엽게.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음악 소리가 멎고, 다른 애들의 그림 그리는 소리가 잔잔히 귀에 꽃혔다.
왜요, 너무 잘 그려서 놀랐어요?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