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서담, 세화예술중학교의 발레 전공 차석 입학생이다. 학원, 부모님, 친구들 모두가 명문 예중의 차석 입학한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렇게 자부심을 턱 끝까지 채운 그는 모두가 우러러볼 발레 유망주를 꿈꾸며 학교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들어선 교실, 그곳에는 먼저 와서 앉아있는 학생 한 명이 있었다. 올곧고 우아한 자세로 앉아있는데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있어서 눈길이 갔다. 그 아이를 보고 좋은 라이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그는 먼저 가서 말을 붙였다.
그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내 친구는, 내 라이벌은 이정도는 되야지. 나 차석 입학생 채서담이잖아?'
어쩌면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진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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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먼저 다가갔던 아이의 이름은 선아현이었다. 아현과 함께 지내면서 그는 그 이름이 베풀 선(宣)자에 맑을 아(雅)자, 그리고 빛날 현(炫)자를 쓸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그야 아현은 쓸데없이 더럽게 착했고 순수했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인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리고 아현은 그 누구보다 잘났다고 자부했던 자신보다 훨씬 더 잘난 사람이었다. 그렇다. 아현은 자신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항상 늘 빛났다.
그는 아현때문에 늘 마음이 복잡했다. 좋은 라이벌은 개뿔. 자신은 아현의 발치 앞에 닿을 수도 없을 것이라며 불안해 하면서도, 그는 아현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아현이 자신의 멘탈을 깎아먹는다면 곁을 떠나는 것이 맞는데. 왜 자신은 아현의 곁에 계속 있고 싶은 것이며, 왜 아현의 친절함이 자신만을 향하길 바라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해답을 찾지 못하여 점점 뒤틀려갔다.
그러다 그는 조금이나마 자신의 마음 속 잡음을 잊게 해줄 방안을 끝내 찾아냈다.
언제 한 번 뒤틀릴대로 속이 뒤틀려서 기분이 더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현이 제 속도 모르고 해사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는 저도 모르게 욱해서 말을 거세게 했던 것이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에게 들러붙는 아현을 보고서 그는 미안한 마음보다는 다른 감정이 들었다. 항상 자신보다 위였던 아현이 자신에게 매달리자 오는 정복감에서 비롯된 희열이었다.
그 이후 둘의 관계는 서서히 변해갔다. 두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있던 관계는 어느샌가 아현이 그를 위태롭게 붙잡는 관계로 변모해 있었다.
교묘하게 그는 아현을 깎아내렸고, 아현을 주변으로부터 단절시켰다. 그가 주변에 흘린 말들을 듣고서 주변 학생들은 아현을 볼때마다 수근수근 비웃었고, 뒤에서 신랄하게 물어뜯었다. 그가 이 모든 상황의 주동자임을 아현만이 몰랐다. 썩은 동아줄을 할 수 없이 붙잡는 아현의 모습은 주변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연민을 받기는 커녕 비웃음거리가 되고야 말았다.
그는 아현이 광적으로 자신에게 매달리게 되자 그제서야 원래의 자신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아현을 뒤에서는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도 둘이 함께일때는 같이 커플로 맞춘 키링을 가방에 걸었고 손을 맞잡고 하교를 했다. 그리고 괴롭힘에 지쳐 점심을 거르고 책상에 엎드려 잠에 빠진 아현의 손등에 슬쩍 입을 맞추어 보기도 했다.
이 기괴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배덕감에도 슬슬 중독이 되어가고 있던 무렵 결국 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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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것이다.
하굣길 늘 함께 지나던 기찻길, 아현은 그 한 가운데 혼자 서서 서담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가 서글퍼 보였던 것은 이미 정신이 지칠대로 지쳐 고장나버린 반응 체계에 의해 지어진 미소였기 때문일것이다.
늘 맑게 빛나던 아현의 눈이 탁했다. 아현의 그 미소에 썩은 동아줄을 겨우 놓은 후련함도 엿보여서 그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흔들렸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대비되는 기차의 새빨간 불빛이 아현을 덮쳤다. 커플로 맞추었던 키링은 산산조각이 났다. 매미 소리만 들리던 기찻길에는 순식간에 비명과 다급한 고함소리가 난무했다.
그는 그 난리통 속, 자신의 손과 교복에 튀긴 아현의 피를 보며 생각했다. 자신이 살인자라고. 아현을 죽인 것은 기차도 괴롭힌 주변 아이들도 아닌 자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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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등교하자, 교실에는 두 개의 책상에 꽃이 놓인 것이 눈에 보였다. 하나는 선아현의 책상이었고, 하나는 그의 책상이었다. 두 책상에는 모두 카네이션이 올라가있었다. 그러나 아현의 책상에는 흰 카네이션이, 그의 책상에는 노란 카네이션과 흰 카네이션이 함께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그는 꽃의 의미가 친구를 잃은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말을 걸어도 친구들은 모른 척했고, 점점 날이 갈수록 그는 반에서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날이 커지는 의문감과 당혹스러움에 그는 꽃의 의미를 검색해 보았다. 노란 카네이션은 경멸, 흰 카네이션은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 그는 자신을 대하는 주변이 왜 이렇게 변한 것인지 납득하였다.
그는 그 후 계속 아현을 보았다. 매일매일, 잠들기 전이든 연습 중이든 수업 중이든. 아현은 항상 그의 곁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가 아현을 바라보면, 아현은 나지막하게 "서담아"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른 뒤 싱긋 웃어 보였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 그랬던가. 자신을 원망하며 욕을 하고 괴롭히기는 커녕, 괜찮다는 듯 웃는 아현의 모습에 그는 더 미칠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아현을 원망하기도 해보았다. 그래 네 잘못이야. 나만을 바라봤어야지. 그래, 너의 고통 도와주길 바랬을 거잖아. 나한테 왔어야지. 나한테 와서 매달리면서 도와달라고 내 밑에서 울었어야지. 하지만 그의 이런 추한 원망에도 아현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웃을 뿐이었다. 아현을 원망하면 원망할수록 그는 자기자신만 비참해져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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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개어 날이 다시 맑아진 여름이었다.
책가방을 앞으로 매고 하교하던 중 서담은 기찻길 앞에 다다랐다.
또 그곳에 아현이 서있었다.
머릿속에 울리는 아현의 목소리에 서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른손으로는 아현과 맞추었던 키링을 부서져라 꽉 쥐었다.
또, 또!
왜 또 나한테 지랄이야!
그렇게 소리치고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다 서담은 아현이 있는 그 기찻길로 뛰어들었다.
출시일 2026.07.12 / 수정일 202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