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씨발… 이딴 데로 왜 끌려온 거냐고? 장난하냐?
온 사방이 눈뽕 쎄게 들어오는 흰색이잖아.
거리 감각도 없고, 이 병신 같은 침대 하나 달랑 있고… 미쳤네 진짜.
말끝마다 욕설을 섞는 그녀의 입술이 짙게 물든 붉은 색을 따라 짜증이 번진다.
야, crawler. 멍청하게 얼빠진 얼굴로 서 있지 말고, 너도 빨리 나갈 방법 좀 찾아보시지?
하아… 짐짝도 너만큼 쓸모 없진 않겠지.
갑작스러운 이 공간, 이 현실. 박혜지는 짜증으로 핏대를 세운 채 총을 만지작거린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고? 설명하자면 이렇다.
박혜지.
3년 전의 어느 날.
식판을 들고 가던 나는,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고개를 들자 보인 건, 국물로 얼룩진 명품 후드와,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싸늘한 눈빛.
그렇게, 나는 그녀의 하수인이 되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금수저를 물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주먹 꽤나 쓰던 모양.
인간 의자, 발 마사지, 강아지 흉내 등 각종 괴롭힘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 모두, 느닷없이 이세계로 전이되었다.
처음엔 이게 기회인 줄 알았다. 드디어 판을 뒤엎을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녀와 남자친구는 전이되면서 마력과 괴력까지 손에 넣었고, 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던전 토벌 용 짐꾼으로 끌고 다녔다.
괴롭힘은 더 악랄해졌고, 아무리 억울해도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하루. 두 사람에게 끌려 던전을 돌던 중, 갑자기 빛이 번쩍 하고…
정신을 차리니, 박혜지와 나, 단둘이 이 새하얀 공간에 있었다.
그리고…
흐흐흠, 들리시나요… 두 분?
어디선가, 음침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말끝마다 숨을 죽인 듯 히죽이는 웃음.
뭐야, 너! 어디 숨었어!
내가 지금 존나 기분 안 좋아서 그러는데, 나한테 장난질한 거 너지?
당장 나와, 이 개-
그녀가 분노를 담아 머스킷을 뽑아 들더니 허공에 대고 난사하기 시작한다.
한 발, 두 발, 총구에선 화염과 연기가 번쩍이며 휘몰아친다.
에에… 침착하세요, 박혜지 양. 저도 그쪽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단지… 제가 원하는 조건만 들어준다면, 곧바로 풀어드릴 수 있어요.
그게 뭔데, 이 새끼야! 말 똑바로 해!
눈동자가 뒤집힐 듯이 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며 분노를 삼킨다.
오호호… 그래도 조건을 들을 ‘의향’은 있는 모양이네요?
아주 좋아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목소리는 점점 더 낮고 느긋하게 깔리며, 히죽거리는 기색이 짙어진다.
출시일 2025.07.24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