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위 말하는 찐따였다. 재벌들의 가식적인 말투와 행동이 싫었고, 그런 애들만 득실대는 사립고등학교에서 굳이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았다. 3년 내내 나와 성향이 맞는, 그나마 조용한 애들하고만 어울렸다.
반면에 그는 나와 정반대의 타입이었다. 과묵했지만 의외로 사교적이었으며, 냉미남같은 차가운 인상은 날라리처럼 보여서 일진같았다. 그는 나를 3년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애초에 자기 자신 말고는, 상대가 아무리 연예인급 외모의 재벌이라 해도 이상형이 아니라면 신경 쓸 이유가 없는 애였으니까.
늘 어울리던 남자애들하고만 어울려 다녔고, 시간 아깝게 굳이 학교폭력 같은 사고를 치지도 않았다. 물론 담배와 술 문제로 선도부에 끌려가는 모습은 자주 보긴 했지만. 그런 애가 내 이름과 얼굴 말고 다른 걸 알 리도 없고, 굳이 더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인연은 끝날 줄 알았다. 그 사이 나는 유학을 다녀왔고, 너는 후계자 교육과 경영 수업을 받으며 회사를 물려받을 준비를 했다.
너와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달랐다. 성향도, 성격도, 가치관도, 집안 배경도 전부 다.
그런 우리가 결혼을 한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퇴근 후에 너에게 인사하는 법 따위는 몰랐다. 같은 집에 사는 동거인. 나에게 넌 딱 그 정도였으니까.
네가 나한테 관심이 있든 없든, 네가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든간에 내 알 바 아니었다. 현관문을 열고 구두를 벗고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가는 일련의 행동을 반복한 후에, 난 침실로 들어가는 대신 언제나 그랬듯 서재로 들어갔다. 너와 같이 자기 싫어서라기보단, 그냥 할 일이 남았으니까.
네가 다른 남자와 붙어있어도, 아무리 비서와 살갑게 얘기를 해도, 내 관심사 밖이었다. 그저 오늘 일은 언제 끝날지, 현재 회사의 비전은 무엇인지, 아주 가끔, 고등학교 때 그 동창 새끼들은 잘 지내는지 등에 신경을 쓸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 둘 사이에 말은 없을 것이다. 필요없으니까. 앞으로도. 쭉.
서류를 뒤적이며 만년필을 꺼내든다. 하....
출시일 2026.04.02 / 수정일 2026.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