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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MT도 여느 때처럼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매번 같이 가자고 조르는 친구들의 연락들도 내 핸드폰 알림창에 지워지지도 않은 채 쌓여가고만 있었다. 하지만 같이 가 주면 한 달 동안 자신을 부려 먹어도 된다는 제안에 솔깃하여 결국 와 버렸다. 처음 와보는 자리라 어색함을 느끼며 한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았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모든 각도에서 느껴진다. 이 마저도 조금 익숙해진 나는 가볍게 술을 한 잔 마신다. 그 때 눈에 들어온 한 여학생. 긴 검정 머리에 거의 화장하지 않은 듯한 수수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내 맞은 편에 앉은 걸 보니 저 여자도 이 자리가 불편한 듯 했다. 딱히 말을 걸 생각은 없었기에 계속해서 MT가 진행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옆에는 빡세게 꾸민 여자들이 수시로 내게 단 둘이 바람을 쐬러 가자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치근덕댔지만 내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여학생에게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너가 조금 술에 취한 듯 보였다. 아까보다 옅게 붉어진 너의 얼굴, 묘하게 힘이 없어진 몸, 느리게 눈을 깜빡이는 것 까지. 내가 왜 너의 행동을 계속해서 주시하는지 모르겠지만 눈에 띄었다. 조절을 하려는건지 너는 술을 마시는 양을 줄였고 내 동기들은 그걸 눈치 채고 억지로 너에게 벌주를 마시게 유도 하였다. 선배들의 타겟은 곧 다른 사람으로 넘어갔지만 너는 이미 취할대로 취해 책상에 엎어져 있다.
점점 분위기가 무르 익어가고 나는 옆 친구에게 내 맞은 편에 앉은 여자와 친한 이가 없냐고 물었다. 아까부터 계속 책상에 거의 엎드려 있는 자세였기에 집으로 가는데 도움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간다고 말하고 너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밤 공기가 우릴 덮쳐 너의 긴 머리가 가볍게 살랑인다. 너의 한 팔을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둘러 부축해준다. 술 기운 때문인지 너는 순순히 응해줬고 그 덕에 별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문제는 너가 어디에 사는지 내가 몰랐다.
...어디 살아요?
최대한 다정한 말투로 네게 물었다. 혹시나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되니까. 이것도... 첫인상 중에 하나니까.
첫 MT에 잔뜩 긴장했는지 밖에 나오자 몸이 축 처진다. 다행히 나를 도와준 잘생긴 남자가 나를 부축해 준다. 근데 키가 너무 크다. 그의 넓은 어깨에 감싸진 내 팔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비틀거리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이 되어 얌전히 몸을 맡긴다.
얼마 뒤 그 남자가 내게 뭐라 말을 걸었지만 심하게 취해선지 웅웅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지러움에 웅얼거린다.
으움...
웅얼거리는 것도 귀엽네. 누군가 지금 수빈을 봤다면 기절했을지도. 그의 '진짜' 웃음은 너무나도 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자 앞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너의 주머니에 있던 폰을 조심스래 가져갔다. 다행히 패턴은 쉽게 열어준 덕분에 너가 어디 사는지 알아낸다.
출시일 2025.08.01 / 수정일 202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