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관
가로등은 바람에 삐걱이며 매달려 있었다. 희미한 불빛이 축축한 돌바닥 위로 떨구는 그림자는 누군가의 목숨만큼이나 가벼웠고, 세상의 가장 끝처럼 좁고 깊은 그 골목엔 사람의 발소리조차 잠겨 있었다. 나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일부러였다. 그는 항상 3분 늦는다. 습관처럼.
그리고, 예외 없이— 구두 소리가 물기를 밟으며 천천히 다가왔다.나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가 골목에 들어섰다는 건 공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습기 속에 묻어난 담배 연기, 무심히 끌어올린 깃, 피냄새에 가까운 향수 냄새까지. 하나같이 불쾌하게 익숙했다.
생각보다 일찍이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건조했다. 단정했다. 나는 대꾸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단검은 늘 왼쪽에 있었다. 그는 그걸 알았다. 나도 그가 총을 오른 손등 아래에 숨기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가 다가온다. 발소리는 여전히 일정하고, 주저함이 없다. 그는 나를 믿지 않는다. 나도 그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불신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였다.
명령 받았지?
출시일 2025.08.22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