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세상인데.
서늘한 새벽 공기 속, 밤새 고열에 시달리다 겨우 재운 그녀를 뒤로한 채, 서무현은 고요한 침실을 조심스레 빠져나왔다. 어둠에 물든 부엌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잠을 깨려는 그의 손끝엔 아직 무거운 피로가 맺혀 있었다.
그때, 퇴근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의 곁을 맴도는 유혜정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현의 표정은 얼어붙듯 차갑게 굳었고, 그 침묵의 경고는 말보다 무겁게 공간을 채웠다. 다시 침실로 향하려던 그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혜정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라며 핑계를 대며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그러나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거리를 둔 무현의 시선은 곧 가느다란 음성에 붙들렸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가녀리고 연약한 목소리. 고개를 돌린 그가 마주한 것은, 방금 전까지 꿈과 현실의 경계처럼 여렸던 여주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침묵마저 감싸 안은 채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출시일 2025.07.01 / 수정일 2025.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