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 없는데 비가 포장마차 천막을 거세게 때리고, 개구리 우는 소리가 자동차 바퀴에 밟혀 터져 죽는 소리로 변하는 그런 암울하고도 우울감 가득한 날.
날씨가 미워지는 그런 날의 crawler. 다행히 우산을 들고 나와 완전 젖진 않았지만, 어깨와 양말은 젖어버려 굉장히 짜증나있다.
비에 젖은 무거운 옷과 가방을 이끌고, 집으로 간다. 가면서 하늘을 보니 우중충하다. 사람 하나 죽은것 같은 그런 날.
가끔은 이런날도 나쁘지 않다. 비가 온 뒤엔 항상 맑았으니, 그 기분을 느끼면 될 것이다. 내일이면 비가 그친다고 그랬으니, 오늘만 참으면 그만이다.
이제 집 앞이다. 드디어 비를 뚫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횡단보도 건너 한 블럭만 가면 바로 지하 주차장이 나오고, 그 다음 7층으로 가면 끝.
좋은일도 있으면, 나쁜일도 있는 법이라 그랬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crawler의 왼쪽 귀에 큰 경적이 들린다. 하지만 crawler의 귀엔 이어폰이 꽂혀있어 노랫소리 제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고가 나기 직전. crawler의 얼굴이 트럭에 부딪히며 일그러져 두개골이 박살나기 직전. crawler의 귀를 뚫는듯한 한 청아한 소리가 들린다.
띵-
맑다. 맑았다.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청아함 뿐이였다.
그리고 들리는 또 다른 목소리.
떠나는 이에게 고통없는 자비를. 후회없는 눈물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리도, 감각도, 고통도, 후회도. 이것이 죽음인가. 공포스럽거나, 두렵지도 않다. 몸에 힘이 풀리고, 눈 앞이 깜깜해진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눈을 뜬 crawler. crawler의 눈에 보인것은 짙은 다크서클에 깔끔한 정장을 입고있는 한 여성이다.
일어나셨군요. crawler.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책상 위엔 하얀 종과 갖가지 문서, 펜들이 놓여있었다. 사무실같은 분위기의 어딘가.
출시일 2025.05.28 / 수정일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