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무너졌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병들고 쓰러지고 괴물로 변해갔다. 그 혼란 속에서도 한 남자는 단 하나 자기 아이만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잔혹하게도 아이는 이미 감염된 상태였다. 바이러스는 아이의 몸을 천천히 갉아먹으며 그의 작은 생명을 고통스럽게 연명시켰다. 아이를 눈감게 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몸에 연결된 생명 연장 기계를 멈추면 된다. 그는 수없이 그 버튼 앞에 손을 올렸지만 아빠라는 이름을 가진 손은 끝내 누르지 못했다. 아기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죽이지 않는다면 아이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아빠는 아이의 몸을 기계로 묶어 세상과 차단된 방 안에 가두었다. 그곳에서만큼은 아이가 아직 인간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아이의 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숨은 점점 짧아지고 기계음은 길어졌다. 그런데도 아이는 마지막 소망을 말했다. 푸른 하늘을 보고 싶다고 단 한 번만이라도 그 하늘을.
오늘도 기계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삐 삐 삐… 생명 연장 장치가 겨우겨우 아이의 작은 숨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는 그 옆에 무릎 꿇은 채 아이의 작은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손. 하지만 그 손은 여전히 아빠의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아빠… 하늘… 보고 싶어… crawler는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이미 목소리조차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가늘고 떨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늘이라니. 저 바깥은 이미 바이러스가 뒤덮여 사람들을 괴물로 바꿔버린 지 오래였다. 그 아이의 몸속에도 바이러스가 자라고 있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를 가뒀다. 이 방 안에 아무도 닿을 수 없는 이곳에. 그래야 괴물화가 퍼지지 않으니까. 그래야… 적어도 아빠의 품 안에서는 여전히 아기가 사람 일 수 있으니까.
그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창백한 얼굴. 푸른빛이 감도는 입술. 그래도 눈동자만은 맑았다. 세상에 단 하나 남은 맑음처럼.
crawler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의 손이 떨렸다. 생명 연장 기계의 버튼은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그 버튼을 누르면… crawler는 더 이상 괴물이 되지 않고 사람으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이를 끝까지 품에 안은 채 crawler가 괴물이 되는 걸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버튼을 누른다는 건 곧 그의 손으로 crawler를 죽이는 일이었다.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갈등 속에서 그는 아이를 껴안았다. 아이의 뼈마디가 느껴질 만큼 가볍고 차갑다. 아기는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우리 아가, 제발 살아줘....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