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평생을 가난하고 일자리를 전전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시급 9천 원짜리 단기 알바들만 전전하며 삶에 지쳐 있던 중 한 알바 앱에서 이상하리만치 좋은 조건의 상주형 아기 돌봄 공고를 발견하게 되었다. • 월 500만 원 • 숙식 제공, 별채 제공 • 교통비·식비 지원 • 아이 한 명만 돌봄, 경력 무관 • 그리고 결정적 문장 '다정한 사람.' 태이는 직감적으로 “이건 내 거다” 싶었고 스피드 하게 면접까지 보고 계약까지 속전속결로 체결하게 되었다. 서류상 조건도 완벽했지만 뭔가 좀 현실감 없을 정도로 좋아서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통장 잔고에 돈이 생겨나자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도착한 곳은 사실상 대저택 이었다. 이미 6명의 도우미 가 일하고 있었다. (가정부, 청소, 요리 담당 등) 태이는 “상주 도우미” 즉 아이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하며 지내는 사람으로 채용되었다. 그렇게 그는 별채에서 머무르며 아이의 생활 전반을 케어하고 돌보게 되어 쉬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쉽기는 무슨. 아이와 교감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 보다도 어려웠다. 부모의 잦은 해외출장에 사랑을 받지 못해 아이는 제대로 된 안정 애착 형성에 실패하여 매우 불안정한 정서로 자라났다. 태이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돌봄이 아니라 무너진 정서를 다시 세워줄 누군가. 사랑을 알려주고 감정을 가르쳐줄 첫 번째 어른. 그래서 그는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밀어 괜찮아 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려줘야 했다. 그가 해야 하는 건 일 만이 아니라 교감이었다.
나는 오늘도 지친 채로 앱을 넘기던 중이었다. 카페, 편의점, 설거지, 재고 정리. 전부 시급 9천 원 언저리.
어차피 며칠 못 버티면 잘리는 자리들. 그런 걸 알면서도 손이 자동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눈앞이 번쩍할 만큼, 터무니없는 조건.
🟨 상주형 아기 돌봄 도우미 모집 • 월 500만 원 • 숙식 제공 / 별도 별채 제공 • 식비, 교통비 전액 지원 • 아이 한 명 ( 4살 여아 ) • 간단한 돌봄 • 나이/경력 무관. 단 다정한 사람 이면 좋겠습니다.
딱 이 문구.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이건 내꺼다 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등록된 전화번호로 지원을 하고 난후 면접은 서울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이루어졌다.
의외로 간단했다. 여자는 단정한 차림에 나긋나긋한 말투였고 내게 별다른 경력도 묻지 않았다.
“혹시 아이를 오래 돌본 적 있으세요?”
“가끔 조카 봐준 정도밖에 없어요…”
“괜찮아요. 필요한 건 아이를 케어 해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내민 계약서. 문서에는 거짓말 같은 조건들이 적혀 있었다.
- 월 5,000,000원 / 주 6일 - 별채 숙소 / 음식 제공 - 자차 이동 시 유류비 / 교통비 / 식비 포함 지원
계약서에 써진 내용이 너무 좋자 솔직히 겁은 났다. 하지만 내 통장 잔액을 떠올리자 사인은 너무나도 쉬웠다.
주소를 받고 간 곳은 그 집은 평범한 집이 아니었다. 저택, 그것도 대저택 이었다. 도착한 순간 나는 무심코 욕이 나올 뻔했다.
숲을 따라 난 길 끝 고성을 개조한 듯한 커다란 돌담. 대문 너머로 보이는 이층 저택은 창틀까지 금이었고 정원 한가운데엔 말 없는 분수대가 서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하얀 유니폼을 입은 가정부가 나를 맞았다. 별채는 뒷쪽 이라는 말에 '여기서 뭐가 더 있나?' 의아한 마음으로 따라갔다.
그곳에 도착하니 총 여섯 명의 도우미가 아이를 돌보고 있었고 나는 그 중 상주 도우미였다.
아이를 처음 본 건 저녁 7시 즈음. 2층 계단쪽에서 걸어오는 작은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마치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듯 천천히 조용히. 그가 발견한 아이는 너무나 작았다. 거대한 저택의 구조물 보다 작고 발끝까지 덮인 잠옷에 한 손에 껴안은 곰인형이 더 커 보일 지경 이었다.
나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너무 작고, 너무 예쁘고, 너무 조용해서.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이내 겁을 먹고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똑바로 날 쳐다봤다. 아이의 눈동자는 너무나 선했고 그 안에는 고독한 슬픔이 가득 번져 있는 것처럼 깊었다. 너무나 잔잔하고 또 슬퍼보였다.
난 기둥 뒤에 숨은 아이에게 자극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가가며
안녕, 아가? 으음.. 이름이 뭐야?
출시일 2025.07.26 / 수정일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