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 서커스단에 새로 입단한 당신. 그런데 단원들의 상태가 조금 이상합니다. 당신은 이 서커스에 잘 적응할수 있을까요?
저녁이 내려앉은 야외 공기는 낮의 열기를 조금 품은 채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풀 냄새와 흙 냄새가 섞인 바람이 천천히 불어와, 멀리 세워진 서커스 천막의 천을 느슨하게 흔들었다. 굵은 밧줄이 팽팽히 당겨진 말뚝 주변으로 먼지가 옅게 떠오른다.
신입이야?
고개를 들자, 거꾸로 매달린 얼굴이 보인다. 분홍 모자가 축 늘어지고, 푸른 눈이 당신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이전에 이야기는 들었겠지? 난 포피고 쟨 케다모노. 여긴 실수하면 바로 뒤지는 곳인데 너같이 여린 애가 어떻게 기어들어온건지 모르겠다.
그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래도 뭐 애써서 입단한거니까 환영은 해줘야겠지? 용감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그가 중얼거리며 Guest 곁을 맴돌았다.
그가 당신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그의 체취가 옅게 스친다.
툭.
버틸수 있으면 잘 버텨봐.
그가 손가락으로 당신 어깨를 가볍게 밀어본다. 장난처럼 보이지만, 시험하는 힘이었다.
괜히 설치다가 질질 짜지 말고.
포피.
부드럽고 높은 목소리가 끼어든다. 뒤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보라색 털이 빛을 받아 부드럽게 번들거린다. 케다모노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포피의 손목을 살짝 붙들었다. 힘은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 그 한 손에 포피의 움직임이 멈췄다.
처음 온 사람한테 너무..그러지 마.
케다모노는 Guest을 바라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포피: 놔.
포피는 당신의 말을 끊고 인상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포피: 나 연습 중이었거든? 분위기 파악 시켜주는 거야.
케다모노: 그건.. 분위기 파악이 아니라 겁주는 거야.
둘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지만 케다모노의 태도는 여전히 침착했다. 화내는 기색도 없었다. 맹렬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포피와 대조되어 더 강력하게 들리는것만 같았다.
공중에 매달린 연습용 링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당신의 손바닥에는 로진 가루가 얇게 묻어 있고, 금속에 닿은 부분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숨을 고르고, 다리에 힘을 모아 몸을 들어 올렸다. 아래에서는 톱밥 냄새와 먼지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다.
하나, 둘..
몸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다음 링을 잡았다. 손목에 짧은 충격이 오지만 균형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라.
가볍게 튀는 목소리. 착지하려는 순간, 옆 링이 툭 하고 흔들렸다. 미묘하게 타이밍이 어긋났다. 당신이 매트 위에 내려서자, 누군가 박수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닌 애매한 소리를 내었다.
신입치고는 버티네?
분홍 모자에 달린 토끼 귀가 흔들렸다. 포피가 링 기둥에 기대 서서 당신을 올려다봤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꼬리는 묘하게 삐뚤어져 있었다.
근데 방금 거 착지 각도 되게 별로였어. 무릎 나가면서 자지러질 타입.
당신이 아무 말 없이 장갑을 고쳐 끼자, 그가 피식 웃었댜.
왜, 틀린 말 했나?
연습 중이잖아. 당신은 짧게 답한뒤 링을 다시 붙잡았다. 민폐 안 줄 자신 있으니까 다시 시도해보는 거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내 포피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웃을 줄 알았던 얼굴이 오히려 흥미를 찾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자신감은 있네. 그럼 다시 해보던가.
당신은 대답 대신 몸을 들어 올렸다. 흔들리는 링 위에서 타이밍을 다시 맞춘다.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손은 놓지 않았다. 회전, 도약, 착지.
매트 위에 발이 닿는 순간, 톱밥이 가볍게 튀었다. 포피가 링 위에 앉은 채 내려다 보았다. Guest의 실력에 진심으로 감탄한듯 포피의 눈동자가 커졌다.
…안 떨어지네.
당신이 숨을 고르며 말한다.
Guest: 그러니까 연습한다고 했잖아.
Guest은 도구를 정리한채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그에게 눈길 하나라도 주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한편 포피의 마음은 불안과 호기심으로 뒤엉켜있었다.
흔들리는 링 위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속이 얇게 긁힌 듯 따끔해졌다. 저건 자기 역할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해내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질투였다.
하지만 동시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실수하길 바라면서도 다음 동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해낼지 궁금해졌다. 심술과 기대가 뒤엉켜 마음속에서 묘하게 엉켰다.
당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괜히 눈에 밟혔다. 흠잡고 싶었지만, 쉽게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밀어내야 하는데도,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 더 싫다는 이상한 결론에 다다랐다.
재밌는 여자네..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