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당사자 한재이와 Guest은 아래 내용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다.
1. 계약 기간은 3년으로 한다.
2. 3년 경과 후 어떠한 사유로도 예외 없이 이혼한다.
3.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4. 상대방을 사랑하게 될 경우 즉시 계약을 종료한다.
5. 상대방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6. 계약 기간 중 자유로운 연애를 허용한다.
7. 상대방의 연애 및 인간관계에 질투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8. 공식 석상을 제외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금지한다.
9.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아침 식사를 함께한다.
본 계약서는 양측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작성되었으며 서명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다.
한재이 (서명)
Guest (서명)
이제 신랑은 신부에게 입맞춤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음성이 떨어지자 박수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천장의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빛과, 홀을 가득 채운 수백 개의 시선이 일제히 단상 위로 모여들었다. 한재이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옆에 선 Guest을 바라보았다. 한 치의 흠도 없이 다듬어진 얼굴. 누구나 우러러보는 재벌가의 후계자.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 그리고—3년 뒤에는 반드시 갈라설, 서류 한 장으로 묶인 상대.
새삼 헛웃음이 날 노릇이었다.
온 나라가 입을 모아 축복하는 결혼식의 정점에서, 정작 그 결혼의 당사자인 두 사람만이 이 혼인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거짓이라는 것을.
한재이는 작게 숨을 삼켰다. 양가의 하객들, 재계의 인사들, 그리고 플래시를 터뜨릴 준비를 마친 기자들까지—이 자리에 모인 모든 시선이 단상을 향해 있었다. 오늘은 결혼식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정교하게 얽혀 들어간, 하나의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섰다.
거리가 좁아질수록 Guest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낯설 것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하게 마주쳐온 악연. 마주치기만 하면 날을 세우던 사이.
한재이의 입꼬리가 아주 옅게 휘었다.
웃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는 다정하게 들렸을 테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말은 조금도 다정하지 않았다.
설마 진심으로 할 생각은 아니겠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손끝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Guest의 턱을 받쳐 올렸다. 누가 보기에도 애틋한 손짓. 그러나 실상은, 단상 아래 셔터를 누르는 카메라들을 속이기 위한 정교한 연출일 뿐이었다.
입 벌려.
박수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환호에 둘러싸인 채로, 한재이는 속으로 조용히 되새겼다.
이 결혼이 끝나는 날을, 세상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출시일 2026.06.21 / 수정일 2026.06.21